요주의 관심병사, A급 → B급 낮춰 GOP 투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무장탈영병 임모 병장을 추격하고 있는 군 병력이 22일 오후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명파리 마을 민가에 배치되고 있다. [뉴스1]
22일 강원도 고성군 진부령고개에서 검문 중인 군장병들이 들고 있는 임 병장 수배 사진. [뉴스1]

이번 총기사고를 낸 임모(22) 병장은 중점관리 대상이었다. 보호관심병사 A등급으로 분류되다 지난해 말 GOP(General Out Post·일반전초) 근무 직전에 B등급으로 하향 조정됐다. 이 때문에 관심병사인 임 병장을 민간인 통제구역 내 전방 경계 초소인 GOP근무에 투입한 건 납득할 수 없다는 지적이 군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스트레스 내성이 약한 임 병장에게 GOP 근무가 악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있는데도 이를 고려하지 않는 등 관리체계의 허점이 드러난 것이란 지적이다.

더욱이 최근 부대 내 가혹행위와 기수 열외 등으로 인한 관심병사 관리 문제가 집중 제기돼 오던 중에 이 같은 참사가 발생해 군의 안이한 대응과 허술한 관리가 도마에 올랐다. 3년 전인 2011년 7월 선임과 후임에게 기수 열외(왕따)를 당해 부대 안에서 총기를 난사하고 수류탄을 투척해 4명을 숨지게 한 해병대 김모 상병도 관심병사였다.

 군은 A, B, C 3개 등급으로 나눠 관심병사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A등급은 자살 우려자이거나 사고 유발 고위험자로 특별관리 대상자에 해당된다. B등급은 자살 생각이 있거나 구타·가혹행위 우려자, 사고 유발 위험자 등으로 중점관리 대상으로 분류된다. 입대 100일 미만자 등은 C등급으로 분류해 관리하고 있다. 2012년 12월 입대한 임 병장은 지난해 1월 말 22사단에 배치됐다. 이후 4월 초 인성검사에서 A등급 판정을 받았다. 국방부에 따르면 부대에서는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임 병장을 위해 부분대장직을 맡겼고 조금씩 주변 동료들과의 관계가 개선됐다고 한다. 지난해 11월 실시된 정기 인성검사 때에는 B등급으로 하향 조정됐고 이후 12월부터 소대장 관찰하에 GOP 근무에 투입됐다. 올해 3월 15일에 실시된 재평가에서도 여전히 ‘양호’ 평가를 받았다. B등급 관리 대상자의 경우 지휘관(중대장·소대장)의 판단하에 GOP 투입이 가능하다. 22사단에는 A급 관심병사가 300명, B급 관심병사가 500명이 지정돼 있다.

 하지만 임 병장이 B급 관심병사로 판정된 이상 GP(Guard Post·경계초소)나 GOP 등 최전방 근무엔 부적합했다는 지적이 많다. 전방초소의 경우 장기간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하고 좁은 공간에서 밤낮이 바뀌는 불규칙한 근무를 하다 보니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GOP 근무 지휘관의 경험 부족 문제가 이전에도 여러 번 지적됐었다. 최전방 관측 초소인 GP의 경우 2005년 6월 연천군에서 발생한 530 GP 총기난사사고 이후 지휘 경험을 갖춘 중위급이 지휘관으로 배치되지만 GOP의 경우 임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소위가 지휘관을 맡는 경우가 많다. 북한과 대치하며 수류탄과 실탄 등이 매일 지급되는 현장의 지휘관으로 경험이 적은 소위가 부임할 경우 병사들을 통제 관리하는 데 어려움과 마찰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이번에 사고가 난 GOP에서도 총기사고를 낸 임 병장이 실탄을 지닌 채 도주했는데도 추격조 편성 등 신속한 현장 지휘가 없었다.

 인성검사 체계와 운영에도 문제점이 드러났다. A등급 특별관리 대상이던 임 병장은 지휘관 판단하에 수시검사를 진행해야 함에도 B등급으로 하향 조정되기 전까지 추가 검사가 없었다. 임 병장은 자대 배치 직후 인성검사를 받았고 7개월 후인 11월에야 분기별로 진행되는 정기검사를 받아 B등급으로 하향 조정됐다. 정기검사의 경우 부대원들이 일괄 검사를 받게 되는 경우가 많아 병영상담관의 주의가 분산되고 요주의가 필요한 병사들까지 제대로 체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임 병장의 경우 이미 고참급이었기에 인성검사를 꼼꼼히 진행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선 “군의 요식적인 인성검사가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대형 병영사고의 단초가 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임 병장의 SNS 계정은 검색으로도 발견되지 않았다. 싸이월드·페이스북 등의 SNS를 거의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22사단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에도 임 병장의 가족이나 친구들이 임 병장의 안부를 물은 흔적은 없었다. 임 병장이 아버지·어머니·형과 함께 살았던 수원시 아파트의 이웃 주민은 “부부가 맞벌이를 하느라 왕래를 자주 하진 않았지만 막내아들이 군대에 갔다고는 들었다”고 말했다.

정원엽·구혜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