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모자부의 시대|손인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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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얼마전까지만 해도 우리네 가정에는 세대에서 세대로 전승되는 가족적인 전통이 있었다. 아버지는 엄하고 어머니는 인자하고 자녀는 효도하고 형은 우애하고 아우는 공경하라는 등의 윤리가 바로 그것이다. 자녀들이 가정에서 이 <엄부자모>식의 소위「아버니의 맛」과 「어머니의 맛」을 안고 산다는 것은 결코 유교나 동양의 누습이 아니다. 이것은 가정윤리를 통한 예절교육과 도덕적인 성숙, 그리고 「부모없는 후례자식」을 만들지 않기위한 방법이기도 한 것이다. 다만 이 유교의 규격적인 가정윤리를 흐뭇한 「사랑」의 윤리로 바꿀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ㄴ데 오늘날에는 우리 주변의 가정이 점차 어머니가 극성스럽고 오히려 아버지가 무관심한 바람에 <암모자부>의 시대로 바뀌어져 가는 것 같다. 영화나 TV화면을 보더라도 가정일에 아버지는 뒤로 밀려나고 어머니가 오히려 설치고 다니는 느낌을 준다.
자녀들이 결혼 상대를 선택할때도 아버지보다 오히려 어머니의 승낙이 관건이 되어 있으며, 심지어 인질범을 설득하는데 있어서도 예외없이 어머니가 동원되고있다. 학생들도 아버지보다 어머니로부터 귀따갑게 <공부하라>는 소리를 듣고있다. 학교에 갔다가 돌아오면 어머니의 성화에 못이겨 미술공부나 「피아노·레슨」을 가고 가정교사에게 시달리니. 실로 그들은 고달프다.
얼마 전, 어느 단체가 주관한 예능지도 강좌에서 한어린이 대표가 『 「피아노」때문에 너무 고생을 해서……엄마가 미워 죽겠다』고 한 일이 있다. 어린이의 눈에 비친 <어머니상>이 <미워 죽을> 지경이라면 이것은 가정교육의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 어머니 한테서의 서로 다른 여러 개의 얼굴과 「남이하니까 나도」식의 허영심은 자칫 잘못하면<무서운 아이>로 키울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받은 가장 기쁘고 아름답고 진실된 선물은 다시 없는 내 자녀들이다. 그런데 어머니가 있으면서 귀중한 애정의 경험을 갖지 못한 어린이가 많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
옛날 우리들의 어머니들은 지금처럼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그 자녀사랑은 교만하지 않았으며, 거짓을 꾸미지 않았으며, 강요하지 않는 사랑이었다. 마치 닭이 알을 품듯이 자애로 운 사랑으로 자녀를 감쌌기에 <미움>이라는 것은 꺼어들 틈이 없었다.
사실 어머니란 종교 이전의 가장 진한 종교이며 그 손은 모든 약중에서도 가장 좋은 <약손> 이다. 진정한 사랑이란, 인간이 가지는 거룩한 마음씨인데, 이러한 어머니의 마음씨는 자녀가 지니는 온갖 장점을 최대한으로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그러기에 가정이란 대문만 닫으면 아늑한 외딴 낙원이 아니다. 가정이 살아움직이는 사회의 한 기본단위라고 한다면, 하루 빨리 아버지의 좌표와 <어머니 됨>을 되찾으려는 성실한 노력이 있어야 하며 또한 가정상이 정립되어야 한다.

<서울산업대학교수·교육학·34년경남밀양출생·연세대·대학원교육학과졸업·저서「한국교육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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