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장한범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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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위선인가, 참회인가. 엄연한 범죄자가 합장을 하고 눈을 감고있다. 얼굴표정으로 보아 그 순간만은 참회의 빛을 읽을 수 있다.
바로 어제 본지 사회면에 실린 어느 유명기업사장 납치미수범의 사진이다. 그는 산간의 사원에 숨어있다가 주지의 권유로 자수를 했다.
이 사진한장을 보며 새삼 우리사회의 한 단면을 생각하게 된다. 범인은 「오퍼」상을 차려놓고도 사업자금이 없어 그런 범행을 모의했다고 한다. 「오퍼」상은 무역「붐」을 타고 우리사회의 일각에 등장한 상징적인 업종이다.
범인은 「모자라는 사업자금」을 자신의 피와 땀보다는 차라리 범죄로 만들어 낼 궁리를 했다.「근검」 「절약」 「노력」 따위는 이범인의 생각으로는 너무나 많은 시간과 고통이 따른다고 판단했을지 모른다.
「한땅 하자」는 횡재에의 만용이 결국 ,범죄를 낳게 했었다.
『죄와 벌』의 한장면이 연상된다. 물론 문제의 범인과 소설의 주인공은 상황이 좀 다르긴 하다. 그러나 소설속의 대학생 「라스콜리니코프」는 「어느날의 한 작은 죄악」은 뒷날 「l00회의 선행에 의해 보장될 수 있다」는 「독선적인 이론」에 사로잡혀 고리대금을 하는 노파를 살해한다. 학대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라스콜리니코프」의 마음 한구석엔 「고리대금」이라는 행위자체도 도덕적으로 경멸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 노파도 노력없이 돈을 버는데…」라는 생각.
그러나 이 주인공은 우연히 알게된 매춘부 (소냐)의 설득에 굴복, 결국 자수하고 만다. 『나는 노파를 죽인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을 죽인 것이다. 악마적인 행위다』 「라스콜리니코프」가 「소냐」에게 한 말이다.
납치미수범의 눈감은 모습은 그의 내부 어느 구석엔가는 숨어있을 「선한 일면」임에는 틀림없다. 비록 그것이 위선일지라도 아뭏든「선」이 나쁜 것은 아니라는 신념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런 표정이 가능한 것이다.
오늘의 우리사회가 직면한 문제가 있다면 바로 가치의 뒤바뀜이다. 자신의 최선을 다해 어려움을 극복하기보다는 정상을벗어난 어떤수법으로써라도 그것을 성취하려는 생각이 그것이다.
인간의 승리를 최선의 노력과 자기희생에서 찾지 않고 요행과 횡재와 비상수단과 요합으로 이룩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범죄를 낳고만다.
모든 사람이 근면과 성실을 신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또 지킬 수 있으면 그런 범죄는 저절로 없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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