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표시 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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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5% 설과 10% 설은 어느 쪽도 맞지 않았다. OPEC(석유수출기구)는 모든 예상을 넘어 원유 가를 14.5%나 올렸다.
원유가 문제를 놓고 OPEC는 강경·온건·중간파로 의견이 엇갈려 있었다.
「이라크」·「리비아」·「알제리」등은 공공연히 25%의 인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온건파인「사우디아라비아」나「아랍」토후국 연방은 오히려 가격 동결을 주장했다.
이 극단의 두 주장 사이에서「이란」·「베네쉘라」·「쿠웨이트」·「인도네시아」등은 그 중간 수준을 놓고 조정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석유 수입 국들은 사태를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일각에서는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비밀 협정 설에 기대를 걸기도 했다. 그 골자는 ①1984년까지 「사우디아라비아」는 원유 가를 5% 이내로 억제하고 ②국제수지의 흑자 부분 가운데 50%는 미국에 장기 투자하며 그 대가로 ③미국은 군사·경제원조를 촉진하고「사우디아라비아」의 전면적인 안전 보장을 책임진다는 것이다. 물론 두 나라는 비밀 협정 설을 공식으로 부인했다. 하지만 미국은 그동안「사우디」쪽에 파격적인 군사지원을 한 것이 사실이다. 우선 F-15전투기 60대의 대량 판매를 결정한 것이 그 상징적인 예다.
OPEC 가입 국 가운데「사우디아라비아」는 원유 매장량이나 산유량으로 보아 최대의 영향력을 갖고 있다. 더구나 미국과의 우애도 어느 나라 못지 않게 깊다.「사우디아라비아」의 요인들은 거의 예외 없이 미국 유학의 학력을 가진 친미주의자들이다.
그러나「이라크」와 같은 나라는 석유 매장량 자체도 한계에 직면해 있다. 따라서 공업화를 급진적으로 서두르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원유 가의 대폭 인상을 일관해서 고집하고 있는 것은 그들 나름의 고민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12월의 예상을 깬 인상은 필경 정치적인 곡절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그것은 「반 사다트」노선을 지키고 있는「아랍」제국의 거센 목소리에 찬물을 끼얹기 위해「사우디아라비아」쪽에서 반대 급부로 던진 미끼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이번의 인상은 미국과 「사우디」의 합작인지도 모른다는 추측도 할 수 있다. 소설 같은 얘기지만, 3류 작만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OPEC 제국은「달러」가의 폭락이 석유 가를 올리지 않을 수 없게 했다고 말한다. 달걀이 먼저인지, 닭이 먼저인지-.
정작 걱정스러운 것은「춤추는 물가」에 석유가 장단까지 맞추어 주는 격이 된 우리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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