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이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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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윤동주 (작고)의 시에는 「순이」라는 이름이 자주 나온다. 이름을 잃고 살던 일제 때에 그는 「순이」에게서 사랑과 슬픔과 향수 같은 것을 느꼈던가 보다.
순이라면 어딘지 순박하고, 다소곳하며, 정숙한 여성을 연상하게 된다. 연지 곤지 바른 치장을 한 여성과는 벌써 인품과 미모가 달라 보인다. 이름이란 그처럼 묘한 「무드」를 갖는다.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일제의 그림자가 이름속에 남아 있는 것을 본다. 소위 창씨 개명을 강요 당했던 역사의 상흔들이다. 희·옥·자…등이 그런 흔적들이다.
한자의 이름 「명」자는 저녁 석에 입구 (구)를 합친 자이다.
해가 저물고 어두울 때 상대편을 부르거나, 자신을 알릴 필요에서 「이름」이 생겨났다는 주장도 있다.
「어두움」속에서 자기를 밝히는 등불이 이름인 셈이다.
이름을 놓고 「성명 철학」까지 펴놓는 것은 좀 지나치지만 그렇다고 허투루 생각할 일은 아니다.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좋고, 쓰기 편하면 그 이상 좋은 이름은 없을 것 같다.
요즘 국회의원 입후보자들 가운데 신인인 경우는 이름자가 까다롭고 어려워 손해를 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름이 난잡하면 그 「이미지」까지도 그러기 십상이다.
우리 나라에서 이름이 「체계」를 갖기 시작한 것은 고려 후기부터라고 한다. 이른바 항렬 (행렬)은 신라의 김유신 장군이 효시를 이룬 사람이다. 그의 아들은 삼광 원광 원진이었다.
항렬은 대체로 오행설에 따라 금·목·수·화·토로, 또는 상생법을 따라 목·화·토· 금·수의 순서로 쓴다. 물론 가풍에 따라 이런 원칙을 벗어나는 경우도 많다.
흔히 이름은 항렬의 원칙을 제외하고도 몇가지 「인연」을 존중하는 관습이 있다. 그 사람과 관련된 이조나 소망, 또는 일화 등이 그 경우다. 공자는 아마 머리가 기형으로 생겼던 모양이다.
이구산을 닮았다고 이름도 「구」라고 했다. 그의 아들은 출생 일에 누가 잉어를 선물한 일로 해서 이름을 「이」라고 했었다.
한국인의 이름자를 조사했던 한국 문학자가 있었다. 빈도수로 보아 「종」자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 다음이 「규」 「근」 「동」 「상」 「수」 「영」 「용」「우」「원」「재」「환」 등.
옛 사람의 이름은 「마리」가 많았다.
종·상·두의 뜻으로 쓰인 것이다. 신라의 법흥왕은 「???」(원종), 진흥왕은 심?? (석맥종」)등.
요즘 우리 주변엔 「해맞이」·「달맞이」·「무지개」·「시내」·「나리」·「민들레」 등 따뜻하고 소박한 우리말을 찾아서 이름을 짓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물론 본명이다. 어색한 것 같지만, 귀에 익으면 한결 친근한 느낌을 준다. 언젠가는 『최 달맞이 선생을 국회로!』라는 선거 유세도 있을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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