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운영 방식의 전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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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국은행은 우리나라의 재정지출을 경제정세에 따라 신축성 있게 운용하되 교육·주택건설 등을 위주로 하는 복지 지향형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은의 지적을 새삼 빌릴 것도 없이 우리나라의 재정운용에 많은 문젯점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자주국방과 경제개발을 동시에 해야한다는 근본적 제약에 겹쳐 급속한 경제·사회적 변화에 충분한 대응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재정의 골격은 60년대의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60년대엔 경제개발의 시동역할을 정부가 해야했으므로 모든 경제활동에 정부가 깊숙이 개입해야 했다.
경제발전 단계 면에서 정부는「파이」를 키우는데 주력하면 되었지 사회개발이나 소득재분배 문제에 소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경제성장과 더불어 재정에 요구되는 기능도 달라진다.
경제개발에 대한 주도역할보다 성장에 따른 명암의 초점과 새로운 사회수요의 안정에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사회보장·교육·도시교통·공해문제가 현실문제로서 등장한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사회개발 수요의 충족엔 많은 재원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재정세입엔 한계가 있으므로 제한된 재원의 합리적 배분을 통해 이를 해결해야 한다. 이것은 바로 세출구조의 변화, 즉 현 단계에서 정부가 해야 할 일과 민간에 넘겨야 할 일의 정확한 구분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런 기본적인 사고전환이 잘 안되고 있는 것이 현 재정의 가장 심각한 문제다. 때문에 민간이 하면 훨씬 능률적일 수 있는 제조업 분야에 정부가 아직도 깊숙이 개입하고 주도하면서 정작 정부가 해야 할 교육·의료·도시 대중교통 등은 민간에 떠넘기는 모순을 빚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수도권 전철이나 공원조성까지 민간에 맡기려 하는데 민간이 할 수 있다는 것은 가용 자원 면에서 국내건설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며 오직 민간과 정부와의 자원배분이 잘 안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할 따름이다.
따라서 새 정세에 알 맞는 새로운 자원배분, 즉 기능의 재 확정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앞으로 개방된 고도산업 사회를 지향해야 하는 역사적 추세에서 정부에 대한 국민의 요구는 다양하게, 변모하고 있다는 점이 충분히 감안되어야 할 것이다.
당장 현실적인 관점에서 보아도 재정의 경기조절기능이 강화되지 않으면 안 된다. 재정이라는 수단을 통해 경기진폭을 완충시켜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산은 거의 한치의 신축성도 없이 경직되어 있다. 경기조절기능은 커녕 만성적자로 통화팽창에 오히려 가세하고 있다.
예산구조에서부터 그것이 적자인지 흑자인지 알지도 못하게 되어 있다. 또 예산편성이 항상 기존예산의 기득권 밑에 타성적으로 조립되는 경향이 많다.
이런 구조아래선 예산의 문제가 문젯점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아니라 새로운 사태에 효과적으로 적응하지 못하게 된다.
예산은 숫자로 표시된 국가의 최고정책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행정적인 차원에서만 인식 된다는데에 핵심적인 취약점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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