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 탄생백50주년 맞아 비참했던 사생활 밝혀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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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전쟁과 평화』등 불멸의 거작을 남긴「래온·톨스토이」의 탄생 1백50주년(9월9일)을 맞아 「모스크바」와 「파리」에서 지금 각종행사가 열리고 있다. 때를 맞추어 「톨스토이」의 비서이며 친구였던「프랑스」인「빅토르·르브랭」의 증언은 이 위대한 작가의 비참한(?)사생활을 자세히 밝히고있다. 남불 「액상프로방스」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묻혀살았던「르브랭」은 97세의 고령.>
『「시베리아」횡단철도의 불인기사였던 아버지가 소설을 사주었다. 「톨스토이」는 누구도 말하지 않는 진실을 나에게 말해주었다. 나는 감격에 넘쳐 편지를 썼으며 친절한 회신을 받았다. 』 그는 이 편지를 인연으로「톨스토이」의 곁에서 살기를 결심했다. 당시(1899년) 「톨스토이」의 모든 창작은 너무나 혁명적이란 평가를 받아 금서가 되어 있었다. 우리는 이 지하문학을 「런던」「파리」 및 「제네바」에 밀수출, 발행하는 조직을 만들었다』고 그는 증언했다.
『「이스나이야·프리아나」의 저택을 찾아갔을 때 52년이나 손위인 「톨스토이」는 우정을 갖고 신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그에게는 신비성이란 없었으며 세계를 투시하고 있었다』 고 밝힌 그는 10년 동안 「톨스토이」곁에서 함께 살았다. 당시「톨스토이」의 생활과 창작은「체르코프」의 재경지원에 의해 유지될 수있었다.
「톨스토이」는 대지주인이 친구로부터 연간 4천「루블」을 받아 서방국가에 작품을 내보냈으며 타자기도 살수 있었다고. 발명왕 「에디슨」이 녹음전축을 미국에서 보내왔는데 이 위대한 작가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싶어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차르」황제는 「톨스토이」문학을 출판금지 했지만 그의 위대성만은 인정, 다른 지식인·문화인들처럼「시베리아」의 강제수용소로 유배하지는 못했다.
그의 회고에 의하면 「소피아」부인은 결혼초기부터 「톨스토이」의 작가생활을 망쳐버렸다는 것이다.
『내가 가장 견딜수 없었던것은 바로 내 앞에서 「소피아」가 「톨스토이」의 면전에 원고뭉치를 던지는 것이었다.』
당시 「톨스토이」는 80세였고 『교활한 부인의 공격앞에 허리를 굽히다가 심지어는 무릎을 부들부들 떨며 얼굴에 피가 마르는듯한』상황이었다고했다.
결국 「르브랭」은 「코카서스」의 의사로 하여금「톨스토이」를 초청케해 지옥에서 그를 탈출시키는데 성공했다고 말한다. 1909년 「톨스토이」와 영원히 각별한 그는 68년과 70년 두번에 걸쳐「포리아나」를 찾았다고 했는데 결국 「톨스토이」는 오늘의 영광과는 달리 작가와 가정생활 양면에 걸쳐 얼마나 불행했는지를 일깨워 준다. 【파리=주변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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