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의 아주 집단 안보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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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일본의 모 신문사와 소련의 관영 학술단체가 공동 주최한 한 「세미나」에서 소련측의 한 대표는 또다시 예의 『「아시아」 집단 안보론』을 제기했다고 전한다.
문제를 데 제기한 주체가 한 나라의 정부도 아니요, 당국자도 아닌데다, 내용 자체에도 별로 새로운 것이 없기 때문에 필요 이상의 관심을 기울일 이유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시기적으로 보아 일·중공의 제휴가 가속화하고, 소련의 역공과 「아시아」 공산권의 분열이 심화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모스크바」쪽의 이 같은 언동에 전혀 무관심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소련의 「아시아」 집단 안보 구상은 「아시아」에서의 미·일·중공의 반소적 제휴 체제를 깨뜨려 이를 소련도 참여하는 공동 관리 체제로 바꾸어 놓으려는 책략으로 평가되고 있다. 소련이 이와 같은 오랜 적략 구도를 처음으로 공식 「외교 강령」으로 채택한 것은 76년 2월에 있었던 25차 소련 공산당 대회 때였다.
그때 「브레즈네프」는 이른바 「신 평화 강령」이란 외교정책을 천명한 가운데 맨 마지막 순위로 『「아시아」제국의 공동 노력에 의해 동 대륙의 안전 보장을 확보하자』고 말한바 있었다. 그러나 「모스크바」의 의도가 어디까지나 중공 포위와 「아시아」국제 질서 운영에의 소련의 직접 참여를 도모하는데 있는 만큼 이 제의는 몽고와 인도·「아프가니스탄」을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들의 냉담한 반응을 샀을 뿐이다.
심지어는 소련을 괄시할 수 없는 「베트남」파 북괴까지도 그 문제에 대해서만은 이렇다 할 호응을 나타내지 앓았고, 동남아 국가 연합측도 아무런 관심을 표명하지 않았다.
미국과 일본의 입장에서는 소련의 저의가 서 태평양·인도양 일대의 서방측 전력과 해상 통로를 차단하려는데 있다고 보기 때문에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아무런 이유가 없다.
중공의 입장에서도 소련의 동「아시아」진출 기도는 미·일보다도 한층 더 반대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이며, 「베트남」이나 「아세안」 국가 역시 독자의 활동 권 확보에 더 흥미가 있을 뿐, 소련의 「관리 참여 요구」에 적극 호응할 자세는 아닌 것 같다.
더우기 소련이 내세우는 집단 안보 구상의 구체적 항목들은 여러 가지 복잡한 저의들을 함축하고 있어 공산·비공산 각국들이 모두 회의를 품기가 쉽게 되어 있다.
첫째, 「무력 불행사」 항목은 중공의 「대만 해방론」에 대한 견제 요소로도 인식될 수 있어 북경측의 심한 반발을 살 여지가 적지 않다.
아울러 이 항목과 더불어 『대화에 의한 분쟁 해결』이나 『국경 불가침 및 주권 존중』이란 항목엔 일본과 북괴가 호응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일본은 「국경 불변경」을 북방 영토 반환 요구에 대한 소련측의 거부 태도로 해석할 것이며, 북괴는 북괴대로 「대화·불가침」 등을 한반도 현상 안정에의 동조가 아닌가 경계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자유국 일반으로서는「각 민족의 사회·경제적 개혁권 인정」이란 표면상 명분이 함축한 월남식 내부 교란 조장 의도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해서 소련의 집단 안보 구상은 공산·비공산을 막론하고 그 어떤 주변국에 의해서도 당분간은 긍정적인 관심을 끌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그러나 소련이 만약 진정으로 「불가침」과 「주권 존중」 「무력 불행사」에 관심이 있다면, 그 말은 지구상 최후의 광신적 현상 파괴론 자인 북괴를 향해서 먼저 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주권 존중과 한반도 평화 정착이야말로 소련이 북괴를 견제하며 호응 해와야 할 「아시아」 평화의 가장 시급한 과제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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