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안 써본 사람 썼다 …'수첩' 밖 1호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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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10일 국무회의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날 국무회의는 비경제 부문을 총괄하는 부총리직 신설과 소방방재청·해양경찰청 폐지를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심의·의결했다. [변선구 기자]

“문창극 후보자가 박근혜 대통령 수첩에 들어 있었을까?”

 문창극(66) 전 중앙일보 주필이 10일 새 국무총리 후보자에 지명되자 여권의 한 인사가 한 말이다. 그만큼 예상을 뛰어넘는 깜짝 인사였다는 얘기다. 문 후보자는 박 대통령과 개인적인 특별한 인연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관피아(관료 마피아) 쇄신과 국가개조라는 대업을 이끌어갈 총리 후보자에 발탁했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같이 일해본 사람’이면서도 자신과 의견 마찰을 빚지 않은 사람을 중용해 왔다. 그런 까닭에 ‘수첩 인사’ ‘회전문 인사’라는 비판이 뒤따랐다. 앞서 김용준 전 후보자·정홍원 총리·안대희 전 후보자 등 3명은 박 대통령과 일해본 경험이 있는 주변 인물이었다. 김 전 후보자는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으로, 정 총리는 2012년 총선 때 새누리당 공직후보자추천위원장으로, 안 전 후보자는 대선 때 정치쇄신특별위원장으로 함께 일했다. 법조인 출신이었다는 공통점도 있다. 그러나 이번엔 사적 친분이나 인연이 없는 언론인 출신인 문 후보자를 발탁했다. 그래서 “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이 변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청와대 주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박 대통령이 ‘수첩 밖 인사’라는 결단을 내렸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날 함께 지명된 이병기 국정원장 후보자 인선 역시 종래의 인사 스타일로 볼 때 다소 파격이란 평가가 친박계 내부에서 나온다. 친박계의 한 인사는 “이 후보자는 친박계이긴 하지만 박 대통령과 그리 끈끈한 관계는 아니었다”며 “능력이나 전문성에 앞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를 따지는 박 대통령의 스타일로 보면 이 후보자의 발탁은 의외”라고 말했다. 김용준 전 후보자는 지난해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인사 추천을 하면 (박 대통령이) 첫째로 겸손하냐, 둘째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냐를 물어보더라”고 인사 스타일을 평한 적이 있다. 이런 스타일은 조각 때부터 이어져왔다. 가까운 사람이라도 자기 주장이 강하거나 껄끄러운 사람은 배제해 왔다.

 이런 인선 스타일의 변화가 안 전 후보자 지명 때부터 감지되기 시작했다는 게 주변의 얘기다. 강골 성격으로 알려진 안 전 후보자는 대선 후보 시절 박 대통령의 뜻과 배치되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펴며 부닥친 적이 있었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그에게 총리 자리를 맡기려 했고, 청와대 안팎에선 “박 대통령이 평소 같으면 절대 쓰지 않았을 사람”이란 평가까지 나왔었다. 문 후보자에 대한 검증 과정에서도 실무진은 “문 후보자가 행정경험이 없고, 소신과 자기 주장이 강한 천상 기자 스타일”이라는 보고서를 올렸지만 박 대통령은 결국 ‘문창극 카드’를 택했다.

 앞서 박 대통령은 지난 2일 “국가 개혁의 적임자로 국민께서 요구하고 있는 분을 찾고 있다”고 말해 인사 스타일 변화를 예고했다. 안대희 전 후보자가 전관예우 논란으로 도중하차하면서 ‘국민 눈높이’란 잣대를 중요한 기준으로 제시한 것이다.

 지역안배를 고려한 것도 과거와 달라진 점이다. 문 후보자는 충북, 이 후보자는 서울 출신이다. 일각에선 “박 대통령이 행정 경험이 없는 기자 출신의 문 후보자를 발탁한 건 언론과의 소통도 염두에 둔 것”이란 해석도 나오고 있다.

글=허진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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