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와 묘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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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는 그동안 물의를 빚어온 묘목을 식재 한 전답의 농경지 환원문제에 단을 내려 76년1월31일 이전에 묘목을 심은 전답에 대해서는 환원 의무를 해제키로 했다 한다.
당초 전답에 심은 관상수가 문제가 됐던 것은 농경지를 잠식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래서 정부는 75년 정기국회에서『농지의 보전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을 고쳐 3년간의 여유를 주고 논밭에 심은 관상수 묘목을 옮기도록 강제규정을 두었던 것이다.
그 시한이 바로 오는 79년1윌31일이다.
그러나 이 조치는 처음부터 그 실현을 어렵게 하는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우선 묘목을 옮기고 농경지로 환원하라고 하지만, 야산개발이 엄격히 규제되고 있는 여건에서 어디로 옮겨 심으란 말인가.
또 다행히 옮겨 심을 곳이 있다 해도 이식 비용이 묘목 값과 맞먹는 실정이었다. 따라서 이 조치는 결국 묘목을 파내 버리라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당시 정부에 신고된 환원대상 전답은 1천8백 정보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시한을 6개월 앞둔 지금까지 1천4백50여 정보가 아무런 손을 못쓴 채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은 정부의 조치가 얼마나 현실을 외면한 것이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 같은 조치가 무리하게 강행되는 경우 국가적 손실은 말할 것도 없고 선의의 농민이 보는 피해는 어떻게 하려고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답답한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늘어나는 조림·조경 사업으로 이미 부족 사태를 빚고 있는 묘목의 수급도 작은 문제가 아니었다.
정부의 입장에서도 시한을 넘긴 묘목 밭은 정부가 대 집행에 의해 농경지로 환원해야하는데 실제로 어디에 어떻게 옮겨 심느냐는 것은 용역한 일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이번 농경지 환원조치를 해제키로 했다는 것은 백 번 잘한 일이다.
특히 이번 정부의 결단은 이미 내려진 조치를 철회하는 것이란 점에서 상당한 고충과 갈등을 겪었으리라 짐작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시정조치를 하기로 했다는 것은『잘못된 점은 과감히 시정하겠다』는 성실한 자세를 보여준 것으로 평가될 만한 일이다.·
이번 조치와 함께 정부는 앞으로 전답에 관상수 묘목이나 다년생 식물을 새로 식재 하는 것은 허가제에 의해 엄격히 규제하리라 한다.
한정된 농경지를 보전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정부의 이 같은 방침은 일단 당연하며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자리를 빌어 정부의 이른바 행정규제가 탄력성을 잃거나 경직화되어서는 안된 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한다.
그것은 법률이 행정에 권한을 위양 하는 이유가 바로 탄력적 운용의 필요성 때문인 까닭이다.
전답에 대한 다년생 식물의 식재만 해도 우리는 무조건 금지보다 여건의 변화에 상응한 유연한 자세를 권하고 싶다.
이 같은 필요성은 당장 과수의 묘목 재배에서도 나타난다. 우리나라 국민 1인당 과실류 의 연간소비량은 61년의 5·9㎏에서 작년에는 20·4㎏으로 늘었다.
수요는 느는데 공급은 달러 과실 값은 사과 1개에 5백∼6백 원, 포도1근에 4백∼5백 원을 홋가 하는 형편이다.
국민의 소비생활에 부응하고 신선한 과실을 많이 공급하려면 과수의 식재를 늘리는 길밖에 없다. 또 과수의 식재를 늘리자면 묘목이 원활히 공급돼야 한다.
정부는 농지보전정책이 전체 농산물 수급정책과 조화를 이루는데서만 참된 의미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여 논밭에 대한 다년생 식물, 특히 과수 묘목의 식재에 신축성 있는 자세를 보여줄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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