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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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자연은 사람을 놀림감으로 만들고 있다. 남쪽에서는 재해 대책 본부라는 간판을 뗄 사이도 없이 수방 대책 본부들을 설치했다.
어제 경상도에서는 16시간 사이에 평균 1백72mm의 비가 내렸다는 소식이다. 이 때문에 곳곳에서 교통이 끊기고 논밭이 침수되었다. 번번이 당하는 홍수 피해다.
매번 이런 꼴을 당하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자연의 놀림감이 되어도 싸다는 느낌마저 든다.
관상대는 남해안에 상륙한 장마 전선은 잠시 자취를 감춰다가 월말에 정식으로 북상, 진군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옇든 앞으로 우산 장수가 톡톡히 재미보는 계절이 된 것이다.
몇해 전인가, 우리 나라 젊은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던 「프랑스」의 「뮤지컬」영화 『「셸부르」의 우산』은 첫 장면에 화려한 색색의 우산이 행렬을 보였다.
우산의 시작은 18세기 「유럽」에서였다. 특히 18세기초에는 「파리」의 멋장이들 사이에서 요새처럼 접히는 우산이 유행이었다.
그러나 「파리」의 비는 대체로 우산을 쓰지 않아도 견딜만하다. 우선 비의 강도가 서울 비의 3분의 1가량 밖에 안 된다. 강우량도 4할 이내다. 「프랑스」나 영국 영화를 보면 애인들끼리는 그냥 비를 맞고 걷는게 보통이다.
우산 없이도 견딜만하니까 그러는 것이다. 겉멋으로 우산을 안 쓰는 것은 아니다. 가난하니까 우산을 안 쓴다고 볼 수도 없다.
옛날 우리 나라에는 물론 우산이 없었다. 일반 서민들은 짚으로 엮어만든 도롱이를 입고 다녔다. 더구나 아낙네들을 위한 우비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양반들을 위한 우비도 따로 없었던 것이다.
아마 장마철에는 모든 생활이 잠시 멈춤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장마란 하늘의 뜻이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장마를 막을 길이 없다. 장마로 인한 홍수 또한 막을 재간은 없다.
따라서 장마철에는 그저 방안에 들어 앉아서 비를 피하는게 제일이다. 이런 생각에서 도롱이 외의 우비를 꾸며내지 않았는가 보다.
요새는 우비도 많다. 「나일론」 우산도 있고, 「레인코트」도 흔하다. 장화도 있다.
그러면서도 장마철이 되면 손 하나 꼼짝하지도 못한다. 물론 심통 사나운 자연을 잘 구슬리는 슬기를 터득하기는 아직 이르다.
그러나 적어도 가뭄 대책 본부라는 간판을 뗄만한 여유쯤은 가질만했으면 한다.
그토록 기다리던 비다. 그것을 이번에는 저주한다면 아무리 사람이 어리석다한들 너무나 방정맞은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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