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언론 개혁론자들의 함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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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국의 정부.언론간 갈등은 그 해법을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끝없는 얘깃거리 가운데 하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2년여 전 신년연설에서 언론개혁을 언급한 이래 한국 정부는 주요 언론사 사주들을 탈세 혐의로 감옥에 집어넣었다.

이들은 엄청난 과징금을 물고 석방됐지만 언론사에 주는 정부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정부에 대드는 이들은 신문 논조를 결정할 권한까지 박탈당하는 심각한 대가를 치를 것이란 경고였다.

*** 공정성 기치 걸고 통제 유혹

지난 3일 노무현 대통령은 첫 국정연설에서 몇몇 신문사가 전임 정부 당시뿐 아니라 새 정부 출범 직후 정부를 부당하게 비난하고 있다며 언론 문제를 다시 끄집어냈다. 이런 언급들과 김대중 정부 당시 검찰이 남긴 선례들에 비춰볼 때 멀지않은 장래 또 한차례 주요 신문사를 겨냥한 정부 조치들이 있을지 모른다.

문제는 보수정당이며 제1야당인 한나라당과 주요 기업들의 지지를 얻고 있는 신문사들을 상대로 한 정부 조치들이 어느 정도 강도있게 진척될 것인가에 있다. 어떤 경우든 실제 피해를 보는 것은 한국 언론의 보도와 논평의 독립성이다.

한국내 개혁 성향의 지식인들은 신문이 항시 공정하고 모든 당사자들을 공평하게 취급해야 한다며 이상적인 언론상을 얘기한다. 이들은 신문 내용 평가를 위한 위원회를 만들고 불공정 보도에 대한 반론권 보장을 요구하거나 또는 주요 언론사의 세습적 소유권을 종식시키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결국 권위적 통치권자가 흔히 들먹이는 언론 통제를 위한 제도장치를 마련하는 쪽으로 결론이 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개혁을 앞세운 이러한 조치들은 결국 언론이 정부에 복종하도록 길들여지고 나아가 독립 언론사들이 정부기관의 하수인으로 전락하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마저 있다.

한국 정부가 3대 신문사라고 하는 중앙. 조선.동아일보의 칼럼이나 사설에 정부 비판적 편견을 담고 있다고 몰아세울지는 몰라도 이들 주요 언론은 많은 좋은 기사를 통해 독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의 독자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정부에 순응하는 일부 신문사의 보도에선 접할 수 없는 가치있는 뉴스들을 주요 신문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대조적으로 한겨레신문은 3대 신문사의 입장과 다른 건전한 논평이나 한국 사회의 역설적 현상들을 부각하는 기사들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독자들이 원하는 충분한 뉴스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 언론이 직면한 위험은 언론사들이 이미 정부의 상당한 영향력 아래 있다는 사실이다. 두개의 TV방송국과 한개의 케이블 뉴스 방송국.영어 방송국.통신사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정부의 통제 아래 있거나 정부가 소유권을 갖고 있다. 게다가 청와대를 포함한 정부 부처 출입기자들이 쓰는 기사는 크게 차별화되지 않는다.

정부 관리들이 자신이 원하는 기사가 활자화되는데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면 왜 정부가 기자들의 부처내 사무실 방문취재를 금지하려는지 궁금하다. 정작 문제는 기자들이 정보를 제공하는 관리들에게 지나치게 우호적이 될 가능성이라고 생각한다. 이럴 경우 기자들이 관리들의 견해를 있는 그대로 기사화하거나 관리들에 의해 놀아날 우려마저 있다.

*** 독립성 훼손이 진짜 反개혁

어느 사회든 권력을 가진 이들은 공정성을 내세우며 언론을 통제하려는 충동에 빠질 위험이 있다. 현재 한국 사회의 아이러니는 집권한 개혁 성향의 인사들이 한 세대 전 독재자들에 저항했던 이들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반대했던 독재자가 범했던 언론통제라는 단견에 빠져드는 것이다. 언론의 역할에 대한 논란은 건설적일 수 있다.

그러나 개혁론자들이 언론을 통제하려 드는 것은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언론을 도구로 활용하게 됨으로써 애초 의도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도널드 커크 IHT 서울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