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움직이는 자연관-이우환씨의 귀국전을 보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이처럼 산뜻하고 충만한 감을 주는 전시회를 왜, 진작 가지지 않았을까. 이우환씨의 작품에 관심을 갖는 이들은 누구나 그런 생각들을 할 것이다.
72년과 76년에 각각 한차례씩 있었던 그의 소품전과 비교하면 엄청나게도 다른 세계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단점은 우선 그가 자기의 작품 세계를 퇴계 사상과 연관시키고 있다는 점에 근거를 두게 된다. 이 점은 그의 이번 작품들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아주 중요한 열쇠가 된다.
그런 선에서 보자면 그의 이번 작품들은 확실히 새로운 것을 보여주는 또 한차례 그의 작품 세계가 변모하고 있음을 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70년대 초기의 그의 평면에 나타나는 점이나 선들은 거의 평면을 증명하는데 동원되는 것이므로 절대적으로 자유를 지니는 것들이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이번 작품들은 훨씬 더 자유스러운 점과 선으로 나타나 있다. 이를테면 그의 점은 화가에게서 떠나 점으로서 존재할 뿐만 아니라 그 점은 무한한 가능성을 시위하고 있다.
물론 그의 점은 스스로 부풀어 나기도 하고 또 스스로 뒹굴고 반복하고 나타났다가는 사라지기도 하지만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리듬」을 가진다. 점은 이제 그 스스로가 주인인 것이다.
그러나 그 주인은 단순히 시간적인 양식으로서만 존재한다.
이우환씨가 퇴계 쪽을 선택한 까닭도 여기에 있는 듯 싶다.
퇴계가 기보다도 이쪽을 강조했다는 것은 결국 살아 있는 점의 시간적인 양식에 특별히 눈을 돌렸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보이지 않는 이의 세계를 가능한 한 보이게 하려는 입장이 이번 그의 작품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어찌되었건 그의 이와 같은 작품들은 70년대 초에 견지하고 있었던 그의 불교적(선)인 세계관으로부터 상당히 변모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변모가 바람직스러운 것일 뿐만 아니라, 현대미술이 결코 우리들의 전통적인 사상과 동떨어진 것이 아님을 증명해 보인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응당 주목되어야 한다. 박용숙 <미술 평론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