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과외수업 금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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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갈수록 과열돼 가고 있는 과외수업은 이제 교육문제의 영역을 벗어나 심각한 사회문제로 번져 가고 있다.
고교 평준화 시책 이후 더욱 심해진 과외열병은 끝없는 수강료 인상풍조까지 몰고 와 심지어 한 달에 몇 십만 원씩의 고가정찰이 붙는가 하면 일류과외「그룹」에 끼기 위한 예약 제와 전도금지불 등 온갖 해괴망측한 기현상마저 빚고 있다.
안방「그룹」과외를 가르치고 있는 소위 A급 과외교사는 한 달에 보통 1백50만원에서 3백 만원까지도 거뜬히 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과외교사들 중에는 4∼5년만에 억대 부자가 돼「과외재벌」이란 소리를 듣는 사람도 생겼다.
이러한 과외열풍은 일부 부유층 학부모들의 맹목적 교육열과 과외교사의 지나친 이윤 적 동기가 야합함으로써 비롯된 병폐다.
이렇게 일부 부유층에서 주도한 과외수업 열병은 당연히 넉넉지 못한 이웃에까지 전염된다는데 문제가 있다.
내자식 잘 가르치기 위해 내 돈 쓰는데 무슨 말이 많으냐고 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과외공부에 무관심할 수 없는 것이 자녀를 둔 부모의 공통된 심정이다.
다른 학생들이 거의 과외공부를 하고 있는 마당에 내 자식만 그대로 두면 낙오된다는 피해의식과 함께 부모로서의 성의 부족이라는 자격지심에 빠져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지상정이다.
이리하여 많은 부모들이 심지어 생활비의 절반 이장을 과외 공부 비에 충당하는 무리를 감행하면서까지 과외대열에 끼어 들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빠듯한 가계의 서민층으로서는 생활비 걱정에 과외 비 걱정까지 겹쳐 과외수업은 시킬 수 도 없고 안 시킬 수도 없는 가장 괴로운 고행이 되고 있는 것이다.
실상 웬만한 가정에서는 대학입학까지 과외수업비가 학교 공납금보다 적어도 3배는 더 든다고 하는 실정이다. 문교부가 추 계한 전국 학부모의 과외수업 비 부담액은 한 달에 70억 원을 웃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 액으로 치 면 무려 8백40억 원, 이는 문교부 연간 예산의 17%와 맞먹는 액수다.
이렇게 볼 때 과외수업 비는 국민경제 적 입장에서도 막대한 낭비임이 틀림없다.
과외가 도리어 교육의 본 류 처 럼 돼 버린 이 나라의 이 같은 교육현실은 바로 학교교육에 대한 국민전체의 불신을 반증하는 것임을 인식해야 하겠다.
고교평준화 시책에 따른 학교수업의 부상이 학교 밖에서의 보완책을 찾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여기다 현직 교사마저 정규수업을 소홀히 한 채 개별적인 과외수업으로 수입을 올리기에 몰두하는 폐단이 교육의 교외 이전현상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문교부는 학술강습소에 관한 법률을 고쳐 5명 이상 과외에 대해서는 이를 사설강습소로 간주, 단속을 강화함으로써 과외수업을 억제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이 같은 금령의 실효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 국민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과외수업이 과열되는 심층구조를 그대로 덮어둔 채 거기서 표출되는 현장만을 규제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1천여 개소에 불과한 관인학원의 부실운영조차 제대로 규제치 못하는 행정력으로 어찌 수만 개소가 넘을 것으로 추산되는 무인가 과외조직과 도시주택가의 깊숙한 안방 속에서 밤중에 이루어지고 있는 소규모「그룹」과외수업행위를 색출, 단속하겠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과외수업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고등학교 교육의 내실을 기할 수 있는 조건의 경비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학교교육이 충실히 실시된다면 과외공부가 이토록 물의를 빚을 만큼 성행되지는 않을 것이 아닌가.
또 장기적으로는 대학의 문호개방, 주지교육방법의 개선, 간판주의 사고방식의 불식, 학교간 격차의 해소 등 근본적인 요인들을 점진적으로 바로잡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와 함께 학부모들도 자녀에 대한 교육열이 만의 하나라도 허영이나 욕심과 결부되는 일이 없는가를 스스로 반성함으로써 올바른 교육풍토 조성에 이바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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