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 다이어트·힐링에 좋은 승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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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말을 타는 것은 자연과 하나 되는 과정이다. 뭍에서는 볼 수 없는 널따란 초지와 오름 등 제주도만의 풍광을 즐길 수 있어 자연스럽게 힐링이 된다.

관광학에서는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가 넘으면 승마가 대중 레저가 된다고 가르친다. 유럽, 일본이 그러했단다. 지난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2만6205달러였다. 2007년 이후 2만 달러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다. 그러나 국내 승마인구는 아직 4만5000명 수준이다.

그래도 정부는 말 산업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전 국민 말타기 운동’을 벌였고, 박근혜 정부도 ‘전 국민 말 사랑운동’을 펼치고 있다. 2012년 확정된 ‘말 산업 육성 5개년 종합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2017년까지 승마인구를 지금의 두 배가 넘는 10만 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아울러 전국 승마장 500곳(현재 366곳), 승용마 1만 마리(현재 5900마리), 승마장 방문객 200만 명(현재 68만 명) 목표도 밝혔다. 쉽게 말해 지금의 승마시장을 두 배쯤 키우겠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정부가 말에 안달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말 산업의 경제 기여효과 때문이다. 말 1마리를 키우면 일자리 4.8개가 생긴다고 한다. 말 920만 마리를 사육하는 미국의 경우 말 산업의 경제 기여효과가 126조원에 달한다(2009년 기준). 가까운 일본도 사육하는 말이 8만 마리가 넘는다.

그러나 국내에서 승마 대중화는 유독 진도가 느리다. 귀족 레저라는 선입견 때문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투자로 승마요금이 많이 내려갔다는 사실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전국 지자체나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승마장의 1회 강습료(40분 기준)는 2만∼6만원이다.

승마는 특히 운동 효과가 뛰어나다. 용인대의 2010년 조사에 따르면 말을 타고 45분 구보를 하면 에너지 소모량이 테니스 단식이나 축구 경기를 뛴 운동량과 같다.

승마의 효과는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아래 위로 움직이는 운동이어서 장에 좋을뿐더러 자세 교정에도 좋다. 심폐 기능을 강화하며 집중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자폐증이나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동물과 교감하는 운동이어서 정서 순화에도 좋다. 무엇보다 말을 타는 건 재미있다. 청마(靑馬)의 해 신록이 무르익은 5월이 가기 전에 다 같이 말 달리자고 권하는 이유다.

초원·숲으로 말 타고 소풍…‘놀멍 쉬멍’ 자연과 하나 되죠
제주서 개발한 ‘힐링 승마’

제주도는 말의 고장이다. 국내 사육마 2만9000여 마리의 약 70%인 2만여 마리가 제주도에 산다. 승마장도 50곳이 넘는다.

지난 1월 제주도는 전국 최초로 말 산업 특구 지역으로 선정됐다. 관련 예산만 860억원이 넘는다. 최근 제주관광공사와 제주대가 공동으로

힐링 승마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말 산업 특구 제주가 본격적인 행보에 나선 것이다. 제주도가 새로 개발했다는 힐링 승마 프로그램 2개를 체험했다.

말과 함께하는 곶자왈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있는 승마 수강생들.

말과 함께하는 곶자왈

제주시 애월읍 장전마을 제주승마공원. ‘말과 함께하는 곶자왈’ 프로그램의 체험장소로 마을이 공동 운영하는 목장이다.

‘말과 함께하는 곶자왈’은 말을 타고 제주의 자연을 만끽하는 프로그램이다. 헬멧과 안전조끼 등 보호장구를 착용하자 교관이 고삐로 말 다루는 법을 설명했다. 그리고 바로 말에 올라 원형 승마장을 세 바퀴 돌고 초원으로 나갔다.

초원에 도착하자 말들이 기다렸다는 듯 풀을 뜯어먹었다. 지금까지 말 타본 경험이 두 번밖에 없다고 하자 옆에서 말에 올라탄 교관이 대신 고삐를 잡아줬다. 교관이 탄 말에 보조를 맞추는 바람에 구보 속도로 초원을 내달렸다. 초보자한테는 버거운 속도였다. 말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온몸에 힘을 줬더니 이마에 금세 땀이 맺혔다. 안장 위에서 자동으로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했더니 엉덩이도 뻐근했다.

20분 정도 구보를 마친 뒤에는 ‘좌(座)속보’로 초원을 산책했다. 승마는 말의 속도에 따라 네 가지로 구분된다. 가장 느린 평보(平步), 엉덩이를 떼지 않고 걷는 좌속보, 엉덩이를 들썩이며 걷는 경(輕)속보, 말을 달리는 구보(驅步)가 있다. 교관에 이끌려 얼떨결에 구보로 달렸다가 좌속보로 속도를 늦췄더니 훨씬 편안했다. 이제야 제주의 푸른 하늘이 보였다. 주변의 궤물오름과 노꼬메오름도 눈에 들어왔다.

초원이 끝나자 삼나무숲이 이어졌다. 쭉쭉 뻗은 삼나무 사이 오솔길을 말이 요리조리 잘도 지나갔다. 제주 기온은 20도가 넘었지만 숲 속은 시원했다. 땀을 흘린 다음이어서 그런지 바람도 달았다. 어느새 1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이런 맛에 제주도에서 초원 승마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승마공원에는 ‘말과 함께하는 곶자왈’ 프로그램(60∼70분 10만원) 말고도 외승(外乘) 프로그램이 더 있다. 완전 초보자를 위한 프로그램은 3만원(15∼20분), 초원을 30∼40분 달리는 중급자 프로그램은 5만원. jhrp.net. 064-799-9540.

승마 수강생들이 말을 타고 노꼬메 오름 인근 삼나무 숲을 거닐고 있다.

말 타고 피크닉

‘말 타고 피크닉’은 말을 타고 어슬렁어슬렁 초원을 거닐며 제주의 풍광을 구경하는 체험 프로그램이다. 제주도 사투리로 ‘놀멍 쉬멍(놀며 쉬며)’ 자연과 호흡할 수 있다. 프로그램의 초점은 말보다 소풍에 맞춰져 있다. 말을 타고 천천히 걷다가 중간 중간 쉬면서 샌드위치·과일·커피 등 간식을 먹는다. 프로그램은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마을의 조랑말 체험공원에서 진행된다. 이 승마공원도 마을이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나들이 코스 길이는 13㎞나 된다. 조랑말 체험공원을 나가서 번널오름을 들렀다가 공원으로 돌아온다. 조랑말(요즘엔 ‘제주마’라 부른다)이 아니라 한라마를 탄다. 한라마는 조랑말과 외국산 경주마의 잡종마다. 조랑말보다 키가 30㎝쯤 더 크고, 외국산 말보다 온순하다.

조랑말 체험공원이 들어선 따라비 승마장은 사방이 확 트였다. 중산간 지역에 들어선 다른 승마장과 달리 주변이 한눈에 들어왔다. “원래 따라비 승마장은 조선시대 왕에게 진상하는 말을 길렀던 목장이었습니다. 다른 승마장과는 다르게 주변이 모두 평지이고 초원이 넓습니다.” 조랑말 체험공원 정혜영 홍보마케팅 팀장이 설명했다.

따라비 승마장을 벗어나 약 4㎞에 이르는 삼나무 방풍림을 따라 쉬엄쉬엄 말을 몰았다. 뒤이어 메밀밭이 이어졌고 편백나무 숲길을 지났다. 번널오름은 자그마한 언덕 같은 오름이어서 말이 힘들이지 않고 올라갔다. 공원으로 되돌아오니까 한 시간쯤 걸렸다. 쉬운 코스여서 말을 처음 타보는 사람도 교관의 인도에 따라 무난히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족의 특별한 나들이 코스로도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0만원(간식비 포함).

조랑말 체험 공원에는 원형 마장을 도는 체험승마(7000원)부터 승마장 인근 3㎞ 길을 왕복하는 초원승마(3만5000원)도 있다. jejuhorsepark.com. 064-787-0960.

글=이석희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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