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1)철창생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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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내가 원산을 떠나 경성으로 들아온 것이 8월10일깨라 기억한다. 원산은 남쪽바다와 달라서 7윌말로 해수욕「시즌」이 끝나지만 한산해진 송도원에 뒤늦게까지 남아있었던 것은 내가 젊었을 때 그만큼 바다와 해수욕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생각하면 내가 피신겸 원산으로가서 1개월 남짓 해수욕을 즐기고 있는동안 될 수 있는대로 제2차「카프」검거사건을 생각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별로 큰 사건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으며 경성으로 올라올 때쯤은 시간도 꽤 지났으니 더 이상의 검거는 없을 것이라고 안심을 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사정은 그렇지 않았다. 서울로 와서 내가 유숙하고 있는 유석창씨 자택으로 갔더니 바로 며칠전에 형사들이 밀려와 내방을 수색하고 책들도 압수해가면서 내 행방을 몹시 찾고 있었다는 것이다.
유씨부부의 의견은 역시 한번 더 어디 피신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겨우 하룻밤을 뜬 눈으로 새우다시피하고 이튿날 아침 일찍 경성역으로 나가 인천항의 기차를 탔다.
같이 원산에 갔던 보전학생 박의 집으로 갈 예정이었다. 그렇지않아도 박은 원산에서 나보다 한열흘 먼저 떠나오면서 나더러 당부를 하다시피 경성으로 올라오거든 곧 한번 인천의자기집으로 놀러오라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내가 찾아가자 박은 크게 환영하였다. 같이 있으면서 자기의 졸업논문 쓰는 것도 도와주고 또 인천 월미도쪽은 아직 해수욕도 며칠 더 할 수 있다고 했다. 다행한 일이었다.
그런데 내가 왜 거기 와 있다는 소식을 엽서로 써서 유씨에게 보냈을까. 잘 있으니 안심하라는 단신이었다. 나는 또 김옥례에게도 편지를 썼다. 월미도는 아직 수영이 한참이니 놀러오면 어떠냐고. 곧 회답이 왔다. 오는 일요일 아침 10시에 하인천역에서 만나자고. 그녀와만나는 것은 가슴이 부풀어오는 기대가 아닐 수 없었다.
토요일 저녁이었다. 나는 내일의 기대를 안고 이발소로 갔다. 여자친구를 맞기위한 단장을하는 셈이었다.
그런데 그 이발이 채끝나기도 전에 박이 웬 낯선 사나이를 데리고 이발소로 왔다. 『손님이 찾아오셨는데요!』 그 사나이는 손을 저으면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어서 이발이나끝내시지요!』하고 말했다.
나는 곧 짐작이 갔다. 형사인 것이다. 후회를 해도 늦은 일이었다. 내가 왜 유씨집으로 펀지를 보냈던가.
그 사나이는 인천서에서 왔다고 했다.
『같이 가시지요.』
인천서라는 말에 혹시 딴일이나 아닌가 하고 무슨 일 때문이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알 수없다. 다만 경성종로경찰서로부터 전갈이와서 연행을 한다는 것이었다. 짐작이 갔다. 갑자기 눈앞에 짙은 안개가 팍 가려오는 어두운 심정이었다. 만사는 끝장이 났다는.
그날 밤은 인천서 유치장에서 지냈다. 유치장 구경을 처음했다. 바지의 혁대를 끄르고 소지품을 내놓고, 철창의 문이 덜커덕 하고 닫혔다. 구석구석에 유령같이 쭈그리그 앉아있는 사람들이 희미하게 보였다.
저녁밥이란 것이 들어왔다. 나무토막 그릇에 보리밥과 썩은「다꾸앙」(단무지)냄새, 비의가 확 거슬렸다. 저녁도 먹은 뒤려니와 그렇지 않아도 도저히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이 못될것 같았다.
내가 손댈 생각도 안하자 구석에서 소리가 들러왔다. 『왜 안드시나요.』 내가 머리를 흔들자 와르르하고 여기저기서 손이 나왔다. 아귀들의 모양 그것이었다. 이것이 지옥이 아니고무엇이랴.
잠이 올리가 없었다. 마침 때가 음력으로 보름이 가까운 것 같았다. 높은 구멍 창틈 사이로 둥근 여름달이 구름사이를 가고 있었다.
흔히 가슴에 화가 치민다고 하는 말을 하지만 정말 그때 심경은 가슴에 불덩어리가 치밀어 올라오는 것이었다. 바로 이튿날 아침은 내가 좋아하는 여자친구와 만나는 날인데 태산같이 부풀어오른 기대가 와르르 소리를 내고 허물어져 내리고 있었다. 천국의 꿈에서 지옥의 현실로 천길속읕 굴러떨어지는 소리였다.
이튿날 아침 서장실로 불려나갔다. 전북도경의 안등이라는 형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여, 백철상, 서로 만나기가 늦었군 그래!』하고 서장을 보며 이야기했다. 『자 보세요. 사회주의를 한다는 친구는 모두가 저렇게 영리해 보이거든요」하고 우선 경성행이라고했다. 수갑대신 노끈같은 것으로 두팔을 묶고 손은 바지주머니에 넣도륵하고 노끈은 웃저고리 밑으로 숨겨지도록 했다. 안등은 말했다. 『이렇게 신사대우를 해주지. 남이 보기에 감쪽같지.그러니까 아예 도망칠 생각은 하지말아!』하고. 나는 경성으로 와서 본정경찰서 유치장에서다시 하룻밤의 지옥살이를 하고 그 이튿날 다시 두팔을 묶여 전주로 호송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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