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선 사건의 새 국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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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1년여 한·미 관계를 긴장시켜 온 박동선 사건은 박씨의 도미 증언 절차가 합의됨에 따라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한·미양국정부는 31일 공동 성명을 통해 박씨의 기소취하 및 전면 면책권 부여, 한국 안에서의 박씨에 대한 한·미 공동 심문, 미국 법벙에서의 증언 및 귀국 보장 등에 합의할 예정이다.
이로써 이 사건에 대한 두 나라간의 절차 문제에 대한 이견은 해소되고, 실질 문제를 규명하는 단계로 넘어갔다. 자연히 한국 측이 이 사건을 은폐하려하지 않나 하는 미국 안의 일부 의혹도 근거를 잃게된 셈이다.
그러나 절차상의 쟁점이 해소됐다해서 이 사건이 완전 해결된 것은 아니다. 어느 의미에선 오히려 박동선 사건의 실질적인 진행은 이제부터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박씨가 도미증언을 하게되면 사건건모가 상당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 결과에 따라 미국에서는 정치의 윤리성이란 문제와 겹쳐 정당간의 싸움이 격화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렇게 되면 한국 정부의 관련 여부가 또 다시 미 의회와 언론의 관심의 초점으로 부각될는지도 모른다.
때문에 이 사건을 둘러싸고 아마 앞으로도 몇 차례의 홍역을 겪게 될 가능성이 잇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런 위험 부담에도 불구하고 우리측이 박씨의 도미 증언을 받아들인건 전적으로 한·미간의 전통적인 특별한 우호관계에 대한 배려로 봐야한다.
박씨에 대한 미국 측의 조사나 그의 도미 증언은 국가간의 법 제도상의 충돌 때문에 원래 상당히 무리한 일이었다.
때문에 도미가 비록 박씨의 자의와 완벽한 보호가 전개된 것이라 하더라도 그의 미국행은 남보기에 한국이 미국의 압력에 굽혔다는 인상을 줄 위험이 없지도 않다.
한·미 관계에 대해 이러한 오해를 받는다는 건 우리뿐만 아니라 미국을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국내외 적으로 불필요한 오해를 유발하지 않기 위해서도 박씨의 도미조건은 엄격히 준수되고 해석되지 않으면 안된다.
미국 측은 공동성명에 명시된 대로 필요한 법정 증언이 끝날 때마다 박씨를 귀국시키는데 조금의 유루도 없도록 해야만 할 것이다.
그동안 미국에서 조국을 배신한 김형욱 김상근 손호영 등의 경우, 직·간접으로 미국 측의 입김이 작용했었다는 것은 거의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런 일이야 있을 수도 없겠지만 혹시라도 박씨의 경우, 유사한 시도가 행해진다면 한·미 관계는 돌이키기 어려운 파국에 빠지게 될는지 모른다.
이점 미 정부 당국은 미국 내 일부 반한 세력의 책동에 박씨가 노출되지 않도록 각별한 신변보호책을 강구해야 하겠다.
그리고 기본적으로는 미국 안에서 박동선 사건이 과잉 논란되고 있는 사태에 대해 미국 측의 냉정한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아뭏든 박동선 사건은 주한 미 지상군의 철수 결정과 함께 한국에 있어 미국은 무엇이며 미국에 있어 한국은 무엇인가를 심각하게 되새기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 최근에는 각기 무조건적인 혈맹이라든가, 일방적인 의존·보호 관계가 아니라 상호 의존과 이해의 공통점 개발이 강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아직은 한·미 관계양식에 관한 논의들은 제각기 일방적인 주장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박동선사건의 과중에 밀리다 보니 바람직한 관계를 실정하는 공동 노력인들 기울일 틈이 있었겠는가.
이 불행한 사건도 한 단계를 넘어서게 됐으니 이제는 한·미 우호관계를 치유하고 새로 조정하는 생산적 활동에 힘을 모으기로 하자 아무쪼록 한·미 관계가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이 더욱 건강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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