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개발원의 『새 교육체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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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교육이란 본질적으로 질의 문제에 귀착한다. 교육기관이나 교육인구가 제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그 사회에서 행해지는 교육이 세계적 수준과 견주어서 질적으로 심한 격차가 있는 것이라면, 그런 교육은 자칫 사회적 낭비가 되기 쉽다. 대학교육은 대학교육대로, 중등교육이나 초등교육은 또 그것들대로, 적어도 세계적 수준과 어깨를 같이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나라의 교육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적어도 교육에 있어서 만은 부유한 나라나 가난한 나라, 또는 선진국과 후진국이라는 격차가 교육의 질적 낙후를 정당화하는 변명의 구실이 되지 못한다. 질이라는 개념은 본래 보편성의 양태를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난한 나라, 후진국이라 할지라도, 그 나라의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마땅히 응분의 투자를 해야하고, 그 나라의 어려운 여건들을 극복하기 위한 창의적 노력으로 독특한 교육방법이나 교육체제를 개발해야할 당위성이 여기서부터 유래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근자 우리나라 교육의 실태는 어떠한가. 이른바 「콩나물교실」이라고 불리는 과밀교실에서의 비교육적 교육현실이 방치된지도 벌써 30여 년이 되었는데도 사태를 근원적으로 해소하려는 노력은커녕 그런 속에서의 몇몇 혁신적 교육방법의 개발노력에 대해서마저 자학적 냉소와 무관심이 지배적이었다.
더군다나 중·고등학교에 있어서는 문교당국자 스스로가 처음부터 어불성설인 이른바 「평준화시책」을 강행하여 극단적인 이질학습집단을 한 교실 안에 몰아넣게 하고, 그나마 우열반의 편성조차 금기로 시달하면서 이렇다 할 학습지도 지침조차 제시치 않고 있는 무책임이 당연한 것처럼 통용돼 왔다.
이 같은 상황하, 23일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발표한 『새 교육체제』(E·M·프로젝트)의 전국적 확대건의는 비단 문교당국자뿐만이 아닌 전 국민적인 관심이 되어 마땅할 것으로 본다. 과밀학급에서의 수업방법 혁신과 도시·농촌학교간의 성적격차 해소 등을 위해 5단계 「피드·백」수업방식을 골자로 한 이 「체제」는 지난 72년이래 만5년 유여의 기간을 두고 11개교 60학급에서의 제1차 소규모 시범 및 4백80학교 30만5천 여명의 초·중교생을 대상으로 한 제2차 종합시범 결과가 그동안 2차의 종합시범연구보고서로써 공표된 바 있었다.
여기서 얻어진 결론은 요컨대 ①학업성취도의 전반적·급진적 향상(평균성적 10점 이상) ②응용력·독창력 등 고차적 정진과정의 학습완성을 증가 ③교육의 지역격차해소 ④학교경영 방식의 전반적 혁신 ⑤교수학습활동 양태의 변화 등 여러 면에서 우리나라와 같은 여건하의 초·중등학교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해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한국교육개발원의 이『E·M·프로젝트』 이외에도 예컨대 연세대 교육연구소가 독자적으로 개발, 이미 외국에까지 널리 보급 채택되고 있는 EDP(몇몇 특정과목에 한정된 새로운 교육발전「프로그램」)등 근자 우리나라에도 초·중교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한 새로운 교육공학적 접근의 노력이 없지 않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우리는 이 기회에 당국의 관심을 환기시키고 싶다.
한국교육개발원 당국은 81년부터 이 새 교육체제의 전국적 실시를 제창하면서, 우선 내년에는 전국의 시·군마다 1개교씩의 시범「센터」(1백74개교·학생22만명 대상)를 두고, 교육적 제 여건이나 학생의 학력 격차가 심한 도서·벽지 국민학교(1천3백88개교)부터 우선적으로 이 새 체제를 채택토록 조치할 것을 건의하는 등 더 한층의 신중을 기하고 있다.
우리는 이 같은 점진적 접근방식을 찬성하면서 동시에 전기한 EDP의 효용성에 대해서도 함께 충분한 검토가 있기를 당부한다.
새 교육체제 실시에 따르는 교사용 수업지침서·학생용 배움 책 및 방송교재의 제작과 교사 재교육 훈련 등에 따르는 비용은 적어도 2백억원 대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나, 이로써 우리나라 초·중등학교 교육의 질적 향상에 획기적인 성과를 보장될 수 있다면 그만한 투자는 반드시 필요하고 보람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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