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큰 골칫거리(?)가 하나 생겼다. 오늘부터 방학. 기나긴 겨울 한 달 동안 개구장이들을 어떻게 묶어둘 것이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당장에야 마냥 즐거울 것이다. 불기 없는 콩나물 교실에서 받는 지겨운 수업도 이제는 없고, 숙제도 없으니 좋을 것이다.
아침밥도 설쳐가며 잠이 덜 깬 눈을 비벼대며 만원「버스」에 시달리는 고역도 없겠으니 좋을 것이다.
그러나 재미도 한 때 뿐이요, 아이들은 이틀이 못 가서 무료에 지칠 것이다.
우선 파적을 위해 아이들이 이 집 저 집 몰려다닐 것이다. 이걸 반기는 어머니들은 아마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시끄럽고, 더럽고, 귀찮고…. 그러니 두 번째에는 『제발 밖에 나가 놀라』고 호령할지도 모른다. 나가 놀 곳이 골목밖에 없는데도 말이다.
서독의 어린이들은 길목에서 놀지는 않는다. 워낙 유원지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눈만 내리면 썰매를 타는 어린이들로 거리가 가득 찬다. 우리나라선 그랬다간 큰 일이다. 차가 안 다니는 샛골목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제일 좋은 것은 미국에서처럼 아이들을 데리고 며칠씩 여행가는 일이다. 그러자면 돈이 있어야겠고, 시간도 있어야 한다. 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설사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놀 시간이 있다하더라도 큰일이다. 이맘때가 되면 「파리」「불로뉴」나 「방셍느」의 숲에는 「페탕크」라는 이름의 쇠공 던지기를 하는 어른과 어린이들로 가득 찬다. 죽은 「퐁피두」 대통령도 이 놀이를 아이들과 함께 자주 즐겼다고 한다.
이렇게 함께 놀 수 있는 「게임」이 우리네에겐 없다. 있다 해도 함께 놀아주는 아버지들도 없을 것이다.
도시 겨울방학을 보는 눈부터가 달라졌다. 그저 난방의 비용을 아끼자해서 방학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교육의 연장이라는 생각은 학교에서나 가정에서나 별로 없다.
따라서 아이들이 군것질 타령만 덜 하고 귀찮게만 굴지 않고 조용히 방학을 끝내주기만 하면 다행이라고 여기는 어른들도 많다.
아이들도 큰 기대를 걸고 있지는 않다. 처음으로 맞는 방학도 아닌 것이다. 방학이 됐다고 부모와 대화하는 시간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한 가지 다행스런 것은 「텔리비전」을 마냥 볼 수 있는 일이다. 어린이를 위한 특별「프로」가 방학이라고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텔리비전·프로」를 가려서 보여주는 부모도 흔하지는 않다. 그저 애들이 말썽을 부리지 않고 공투정질 하지 않는 것만도 고마운 판인 것이다.
이렇게 마냥 고마운 방학이 오늘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왜 방학이 있는지를 의심할 무렵이면 방학이 끝나게 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