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섬유 협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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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번 한미 섬유 협상에서 l차 년도의 대미 섬유 수출 증가율을 0%로 하고 나머지 4년간은 6.5%선으로 합의한 것은 상당히 함축 있는 뜻으로 해석된다. 새 한미 섬유 협정은 GATT(관세 및 무역일반협정)에서 주도하는 다자간 섬유 협정과 같이 78년부터 발효된다.
74년에 시작된 현 다자간 섬유 협정은 금년 말로 종료되는데 이의 연장 여부를 둘러싸고 미국·일본과 EEC·「캐나다」간에 상당한 이견을 보이고 있다. 현 다자간 섬유 협정은 수출 증가율을 원칙적으로 연6%이상 보장토록 되어 있다.
미국과 일본은 이의 무수정 연장을 주장하고 있고, EEC·「캐나다」 등은 수입국측의 특수 사정이 고려되도록 관련 조항의 수정 연장을 고집하고 있다.
한국이나 「홍콩」 등 섬유 수출국들은 약간 미흡하지만 무수정 연장에 동조하고 있다. 한미섬유협정도 그 밑바닥엔 새 다자간 섬유 협상을 고려한 것이며 이는 대 EEC와의 섬유 협상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78년부터 5년간 대미 섬유 수출 증가율을 5.2%라 명시하지 않고 78년 0% ,79년∼82년6.5%로 굳이 나타낸 것은 한미 양국이 다같이 명분을 살리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자간 섬유 협정의 어두운 전망은 벌써 여러 협상 과정에서 충분히 실감되고 있다. 미국과 「홍콩」과의 현장도 1차 연도 0%, 2∼5차 연도 6%로서 연 평균 증가율이 다자간 섬유 협정에서 보장한 6%선을 하회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대미 섬유 협정에서 맛본 차가운 현실은 단지 한국산 섬유의 미국 수출이 둔화된다는 뜻 이상의 것이다. 「유럽」시장도 결코 낙관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섬유의 주 수출 시장인 미국·EEC 등에선 자국내 실업률 증가와 시장 교란을 이유로 섬유 수입 규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다.
이러한 추세는 세계 경기의 장기 침체와 더불어 쉽게 역전될 것 같지가 않다. 일본도 예외는 아니다.1년에 한국산 섬유를 7억5천4백만「달러」(76년) 어치나 내보내는 미국 시장은 갈수록 문호가 좁아질 전망이다.
한국 섬유업은 65만명이 취업, GNP의 25%, 총 수출의 30%의 비중을 갖는 만큼 수출 둔화에 따른 파문은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대미 섬유 수출은 우리나라 총 수출의 10%선에 달한다. 미국은 이번 섬유 수출 증가율을 연평균 현재의 6.75%에서 5.2%로 낮췄을 뿐만 아니라 특정 제한 품목의 확대 등 기술적인 방법을 통해 교묘하게 수입 창구를 좁히고 있다.
우리나라 섬유에 대해선 「쿼터」제·고율 관세의 이중 규제를 하고 있다.
이런 보호무역 「무드」는 계속 확산되고, 동경 「라운드」의 타결이라는 극적인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 한 계속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그 동안의 협상 과정이나 남북회담 등을 통해 개발도상국의 어려운 사정이 많이 호소되었고 또 그것이 타당성을 띤 것은 사실이지만 경기 침체와 무역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선진국들이 이를 선뜻 받아들일 것 같지는 않다.
결국 그러한 대세 속에서 우리는 활로를 서둘러 찾고 준비해야 할 것이다. 당장 섬유에 초점을 맞춰 보면 기술개발을 통한 상품의 고급화 및 다변화와 새 시장의 개척 외에 뾰족한 방도가 없을 것이다.
참고로 한미섬유협정이 71년 체결되어 대미 섬유 수출의 자율 규제가 처음 실시될 때의 범국민적 당황과 비관적 분위기를 상기하고 싶다. 그땐 모두가 섬유업계의 음울한 종말을 느꼈다.
그런데도 한국 섬유 업계는 새 활로를 찾아 비약적으로 섬유 수출을 늘렸다. 한국의 기업도 그 만큼 적응성과 자체 추진력이 있다고 생각되므로 이를 잘 뒷받침 해주면 역시 활로는 찾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세계 섬유류 교역량은 75년 현재 3백13억「달러」에 이를 만큼 크다. 비탄이나 분개는 문제 해결의 방법이 아니다.
이와 아울러 섬유 등 경공업 상품 수출 비중을 점차 줄일 수 있는 산업 구조의 전반적 고도화가 앞으로 지향해야 할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임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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