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소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타일랜드」의 「방콕」시를 가면 한가지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택시」승객과 운전사 사이의 담판광경. 요금을 사전에 흥정해야 하는 것이다.
인도의 「택시」는 「미터」기가 바깥 좌 전방에 붙어 있다. 승객은 목적지에 닿아서 차를 내려 그것을 확인해야 한다. 그것이 귀찮아 운전사에게 『얼마냐』고 물으면 그 대답과 동시에 「미터」기의 숫자는 어느새 사라져있다.
「카이로」시의 「택시」들은 「미터」기의 숫자가 대부분 고유문자로 되어있다. 이를테면「200」대신에 「이백」으로 적혀있는 것이다. 외국관광객의 경우 그것을 알 턱이 없다. 「바가지」를 써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런던」의 「택시」는 승객과 보따리의 수를 따진다. 서울처럼 다섯 사람이 우격다짐으로 타고 「트렁크」에 짐까지 실으면 그 요금도 엄청나게 불어난다.
「도오꾜」의 「택시」는 밤11시가 지나면 그 요금은 운전사와 흥정하기에 달렸다. 대부분의 「택시」들은 먼 거리의 승객을 먼저 태우려고 하며 요금도 그 왕복을 요구한다.
「워싱턴」시의 「택시」는 요금을 「블록」제로 받는다. 기본거리가 따로 없다. 가령 서울의 서대문에서 을지로입구까지 가려면 종로구·중구를 거쳐간 요금을 따져서 내야한다.
선진국 시민들은 차라리「택시」를 잘 타지 않는다. 자가용의 돈도 많지만 요금과 불친절에 질려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한다.
서울의 「택시」는 그래도 세계의 도시들에 비하면 그 동안 인정이 후한 편이었다. 외국인들의 말을 빌면 운전사들이 『필요 없는 말을 거는 일』을 빼놓고는 대부분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
요즘의 「택시」인심은 어떤가.
불과 한두 해 사이에 모든 것이 이젠 옛날 얘기가 되어 버렸다. 불친절은 고사하고 「히스테리」는 예사다. 여기에다 아침 8시부터 밤12시까지 내내「러시」를 이룬다. 최근 전국 자동차노조 서울지부가 내놓은 실태분석에 따르면 실정은 어둡기만 하다. 교통체증이 도심의 경우 지난 3년 사이에 4배 이상 늘어났다. 평균 지체도는 25%에 달해 14분 주행거리 중 5분35초는 가만히 서있는 셈이다.
서울의 「택시」1만2천여 대 가운데 3천대는 그런 체증에 걸려 언제나 발이 묶여 있는 셈이다. 하루아침에 도로사정이 좋아질 전망도 없다. 게다가 운전사는 도급에 따른「입금액」에 쫓기고 있다. 서울「택시」의 악명이 더 높아지기 전에 당국은 무슨 수를 내야할 것 같다. 제도적인 개선이 없이는 악명만 자꾸 높아갈 뿐이다. 발이 묶인 시민의 짜증은 보통문제가 아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