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이 64%인데 양극화는 무슨 … ‘1대99’ 논리는 선동일 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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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호 14면

최정동 기자

“경제민주화는 포기해야 한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그 종착역은 경제평등화이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 비판서 낸 5공 실세 허화평

5공 실세였던 허화평(77·사진) 미래한국재단 이사장의 신랄한 경제민주화 비판론이다. 그는 최근 자신의 주장을 담은 『경제민주화를 비판하다』(기파랑)를 출간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경제민주화의 논리를 조목조목 따지고 들었다. ‘임현진·김종인·백낙청·송호근 주장의 허구’라는 부제에서 거론한 이들에 대해선 “권력자들의 허영심을 자극하는 지식인들”이라며 원색적인 비판을 가했다.

그렇다고 그가 빈부격차의 현실이나 복지정책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건 아니다. 어려운 국민을 돕는 복지는 국가의 당연한 책무이지만 이를 경제민주화라는 정치구호로 포장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다.

-책을 낸 동기는.
“김종인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이 내세운 경제민주화론은 비현실적인 평등주의를 통해 자유를 포기하고 계급사회로 가자는 주장이다. 글로벌 시대에 정치인과 관료가 좌우하는 국가사회주의로 역행하자는 얘기다. 좌파들이 꿈꾸는 민중민주주의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김 전 위원은 트로이의 목마에 숨은 전사와 같다고 봤다. 그 같은 지식인들이 목마에서 뛰쳐나오는 순간 우리 자유시장 체제는 치유 불가능한 상처를 입는다. 이래선 큰일 나겠다 싶어 책을 썼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경제민주화로 총선·대선에서 성과를 거뒀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당시 그 논리의 위험을 모르고 학자들 말에 넘어가 공약으로 내세운 것 같다. 하지만 당선된 뒤엔 경제활성화와 규제완화로 돌아섰다. 집권해보니 경제가 돌아가야 문제가 풀린다는 걸 알게 된 것 아니겠나. 경제민주화의 논리는 한국이 부정한 경제정책을 통해 재벌공화국이 됐으니 정부가 보편적 복지를 위해 시장을 직접 관리해야 한다는 거다. 이건 역사적 사실과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글로벌 시대 지구촌의 보편적 흐름과도 상반된다.”

-지금은 성장을 위해서라도 복지를 늘려야 하는 상황이지 않나.
“그런 논란에 앞서 우리는 ‘작은 정부, 큰 시장’으로 가야 한다. 왜냐하면 아직도 우리는 구시대적인 관치(官治)경제 체제이기 때문이다. 개발시대가 끝나면서 진작에 관치를 풀었어야 했는데 오히려 경제민주화를 들고 나왔다. 이건 관을 앞세워 규제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얘기다. 그러면 우리 경제는 활력을 찾을 수도, 세계사의 흐름을 따라갈 수도 없다.”

-양극화는 심각한 문제 아닌가.
“우리 사회에 빈부격차는 있어도 양극화는 없다. 최근 정부 통계를 보면 중산층 비중이 64%에 달한다는데 이런 나라에서 무슨 양극화인가. 우리 사회를 ‘1대99 체제’라는데, 그럼 가진 사람은 1%뿐이고 나머지는 전부 극빈층이란 얘긴가. 근거 없는 주장은 선동이다. 물론 빈부격차 해소를 위해선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 노인·장애인을 위한 연금이나 실업자를 위한 사회안전망을 늘려야 한다. 복지의 전반적 방향은 어려운 사람들이 일할 여건을 만들어주는 쪽으로 가야 한다. 중요한 건 빈부격차를 핑계로 부자들을 증오하고 계급투쟁을 부추기면 안 된다는 점이다.”

-진보 지식인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비난한 이유는.
“명문대 교수인 데다 사회적 발언도 활발해 영향력이 큰 인사들이 부정확하고 오류가 많은 논지를 돌려가며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5공의 이미지는 여전히 부정적인데.
“비판받을 부분이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5공은 국가가 비상한 위기에 처했을 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위기관리 정권이었다. 또 평화적으로 정권을 이양했다. 역사적 평가는 앞으로의 과제다.”

그는 1980~82년 청와대 비서실 보좌관과 정무 제1수석비서관을 지내며 5공 정권의 로드맵을 짰다. 82년 장영자·이철희 사건의 원칙적 처리를 주장하다 물러났다. 그 뒤 5년간 미국 헤리티지재단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다 귀국해 14, 15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지도력의 위기』(2002) 등 3권의 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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