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생활「리듬」의 굴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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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새 행정수도건설계획을 앞으로 그것이 실현될 경우 우리의 의식 구조와 생활「패턴」에 큰 변모를 가져다주리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각계 인사로부터 가상 행정수도가 건설된 후 우리의 생활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 진단, 엮어 보았다.
상오 6시부터 1시간동안 서울시내의 각 전철역은「남경」(남경은 고려4경의 하나)특별시로 출근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일대 혼잡을 이룬다. 당초 예상과는 달리 수십만 명의 서울시민들이「남경」시내로 혹은 그 인접지역으로 이사해 갔으며 70년대의 경부고속도로 보다 그 폭이 2배나 넓은 서울∼「남경」간 직통고속도로가 건설 꽤 많은 사람들이 고속「버스」를 이용하고 있지만 역시 전철은「남경」출근을 위한 제1의 교통수단이 되었다. 전철이용승객의 대부분은 행정 각 부처의 공무원과 국립「남경」대학교를 비롯한 각 대학분교의 학생들인데 이것은 아마도 요금이 싸고 안전하며 빠르다는 것 때문인 모양이다.「남경」특별시 건설초기만 해도 서울에서「남경」으로 출근, 혹은 통학하는 사람들은 행정수도가 남경으로 옮겨지기 전보다 아침저녁으로 3시간 가까이 시간을 허비하게 된데 대해 제나름대로의 불평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남경」으로 이사할 수 없는 형편이거나 직업을 그만둘 수 없는 형편이고 보면 빨리 체념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남경」시가 건설되기 전에는 서울시민들이 서울시내에 있는 직장에 출근하려면 아무리 변두리 지역에 살더라도 1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상오 6시30분에 일어나면 가벼운 아침 운동을 하는 등 여유를 가지면서도 9시 출근시간에 넉넉하게 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남경」시에 출근하면서부터는 자는 시간을 최소한 1시간 이상 줄이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생활의「리듬」이 근본적으로 바뀐 것이다. 특히 전철역이나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들은 상오 5시쯤에 일어나지 않으면 지각하기 십상이다. 「남경」시의 모 행정부처에서 3급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K씨 집은 상오 6시면 난리가 난 듯 어수선하다.
그도 그럴 것이 K씨와 외국대사관에 근무하는 딸,「남경」대학교에 다니는 아들 등 3명이 2시간이 넘는 출근길에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남경」까지 출근해야 하는 당사자들은 물론 다른 식구들까지「남경」이나 그 근처로 이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나 지금은 다만 집에서「남경」까지 몇 분만에 날라다 주는「헬리콥터」라도 있었으면 하는 허황된 꿈을 키울 따름이다.
2시간 출근길을 지겨워한 많은 사람들은 색다른 생활 양상(이미「브라질」의「브라질리아」나 호주의「캔버라」, 서독의「본」에서 있었던 것이지만)을 개발했는데 그것은 서울과 「남경」에서 두 집 살림을 한다는 것이다.
말이 두 집 살림이지 실상「남경」의「아파트」나 주택가에 방한간 얻어 놓는 것이지만 어쨌든 두 집 살림은 두 집 살림이다.
서울에서 출퇴근하는 것보다 돈은 훨씬 많이 들지만 그만큼 편하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이 생기게 된 것은 출근시간 때 집에서 겪는 혼란보다 퇴근 무렵「남경」에서 겪는 교통이 더 심하기 때문이다.
교통수단이 점차 좋아질 전망이기는 하지만 아직「남경」의 전철역이나 고속「버스·터미널」은 서울에서의 출근시간 때보다 더 혼잡해서 이따금 막차를 놓쳐「호텔」이나 여관신세를 지게 되자 어려운 형편에도 어쩔 수 없이 두 집 살림을 꾸리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남경」에 출근하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아예 고향이나 연고지를 찾아 충청 남-북도나 강원도 등 서울∼남경간의 거리와 비슷한 지역으로 이사해 버린 것도 특이한 현상이다. 서울에서「남경」으로 출근하는 것보다 시간은 더 걸리지만 그만큼 편하게 오갈 수 있다는 생각에서이다. <정리=정규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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