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총리 사의 … 박 대통령 "사고 수습 후 사표 수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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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자 가족들이 27일 진도체육관에서 정홍원 총리의 사의 표명 기자회견을 지켜보고 있다. 정 총리의 사표는 사고 수습 후 수리될 예정이다. [김상선 기자]

정홍원 국무총리가 27일 세월호 참사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정 총리의 사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만 사표 수리는 사고 수습 이후에 이뤄진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박 대통령은 정 총리가 사의를 표한 것에 대해 (사표를) 수리하기로 했다”며 “그러나 박 대통령은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구조작업과 사고 수습으로 이것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사고 수습 후에 수리하는 것이 바림직하다’고 했다”고 전했다.

 정 총리의 사퇴는 ‘박근혜 정부의 국가 개조 프로젝트’의 신호탄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정 총리의 사의 표명을 계기로 박 대통령의 대대적 문책·쇄신 인사가 탄력을 받게 될 것이란 관측이다. 내각 총사퇴 카드까지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박 대통령이 개각의 폭과 시기를 놓고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박 대통령은 이번 사고 과정에서 관료사회의 총제적 난맥상이 드러난 만큼 인적 쇄신은 물론 ‘안전한 나라 만들기’ 등을 위한 ‘국가 개조’ 수준의 대대적인 혁신을 단행할 방침이다.

 정 총리는 이날 오전 정부 서울청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사고가 발생하기 전 예방에서부터 사고 이후의 초동 대응과 수습 과정에서 많은 문제를 제때 처리하지 못한 점에 대해 정부를 대표해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진작 책임을 지고 물러나고자 했으나 우선은 사고 수습이 급선무이고, 하루빨리 사고 수습과 함께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책임 있는 자세라고 생각했다”며 “그러나 더 이상 제가 자리를 지킴으로써 국정 운영에 부담을 줄 수 없다는 생각에 사퇴할 것을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정 총리는 특히 “이번 사고를 보면서 우리 사회 곳곳에 오랫동안 이어져 온 다양한 비리와 잘못된 관행들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며 “이번에는 반드시 그런 적폐들이 시정돼 더 이상 이러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정 총리의 사의 표명은 세월호 참사 발생 12일 만이며, 총리 취임 후 426일 만이다.

 정 총리는 전날 기자회견 사실을 박 대통령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총리는 26일 오후 정부 세종청사에서 관계장관회의 후 귀경했다. 오후 9시쯤 일부 총리실 관계자들에게 문자메시지로 ‘27일 새벽 출근’ 지시를 내렸다. 문자 메시지를 받은 관계자들은 ‘중대 발표’가 있을 것임을 직감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도 정 총리의 의사를 전달받고 기자회견을 만류하지 않았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정 총리가 사고 직후 이미 박 대통령에게 책임지고 사퇴하겠다는 뜻을 전했고 이후에도 여러 경로를 통해 그런 의지를 밝혀 박 대통령이 이미 정 총리의 뜻은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사의를 만류하지 않은 건, 대대적인 문책 개각에 대한 의중이 어느 정도 드러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다만 사표 수리 시점에 대해 ‘사고 수습 후 사표 수리’란 결정을 내린 건 현오석 부총리가 사고 수습에는 적임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란 분석이 청와대 주변에서 나오고 있다. 이날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공동대표가 “이 시점에서 총리가 홀로 사퇴를 선언한 것은 비겁한 회피”라고 비판한 것도 박 대통령의 결정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에서도 정부가 사표 수리에 앞서 사태 수습에 우선 힘을 쏟아야 한다는 주문이 이어졌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미 사의를 표해 힘을 잃은 총리가 사고 수습을 끝까지 지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박 대통령이 정 총리의 사의를 받아들이기로 함에 따라 관료사회에 대한 쇄신작업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정 총리가 사의를 표한 만큼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 서남수 교육부 장관도 사표를 낼 것이란 얘기가 정치권에서 나온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경제팀도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다만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시점이어서 대대적인 개각이 선거 전에 이뤄질지가 관심이다. 현재로선 관계 부처 장관들이 사고 수습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 데다 지방선거가 있어 정 총리 혼자 사퇴하고 선거 이후에 대대적인 개각이 있을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다만 여권 일각에선 사고 책임이 엄중한 일부 장관들에 대해선 지방선거 전이라도 교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글=신용호·천인성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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