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의 외교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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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최근 OPEC(석유수출국기구)의 석유가 인상 이후에 나타난 몇 가지 일들은 새삼 흥미를 끈다.
우선 「이스라엘」의 「라빈」수상이 연립 내각을 깨고 사임한 것은 「해프닝」은 아닌 것 같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야마니」석유상은 OPEC제국으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는, 이른바 그의 「온건 노선」에 대해 너무도 태연하다. 미국은 또 미국대로 「사우디아라비아」의 그런 정책에 담담한 체 하고 있다. 소련은 하필이면 OPEC외 인상 조치와 때를 같이해 소련산 석유가를 대폭 인상했다.
「야마니」는 이런 일련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자국 TV와의 「인터뷰」에서 『산유량을 급격히 증가시키지 않겠다』는 미묘한 발언을 하고 있다. 바로 한 주일 전의 얘기와는 그 어조가 사뭇 달라졌다.
이것은 단순히 OPEC 제국의 귀에다 대고 하는 얘기만은 아닌 것 같다. 물론 다목적의 효과를 계산한 것이긴 하겠지만 그 발언의 행간을 더듬어 보면 미국 쪽을 의식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야마니」의 「온건 정책」은 꼬리가 상당히 긴 복선이 숨어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석유가를 중동 문제의 미끼로 삼으려는 의도다. 「야마니」는 미국의 새로운 행정부에 우선 약을 먼저 주고, 그 뒤에 병을 안겨 주는 정치적 술수를 쓰려는 것이다.
중동 문제의 실마리는 미국측에서 「이스라엘」에 대해 평화 협상에 응하도록 작용을 하는 데에 있다. 「이스라엘」이 협상 「테이블」에 나와서 할 일의 첫 장은 점령지를 포기하는 협상에 성의를 보이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연립 내각은 그 동안 강·약으로 혼선을 빚고 있어서 결국 그 어느 쪽도 발이 묶여 있었다. 「라빈」은 기어이 사임을 선언하고 어떤 돌파구를 터놓는 새 발판을 제시했다, 그의 「평화 구상」에 제1보를 내딛기 위해서는 발을 묶고 있는 정치 환경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것은 국민의 다수 의견으로부터 신임을 묻는데서 시작된다. 따라서 사임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의 「카터」새 행정부는 그 동안 「아랍」과 「이스라엘」양쪽에 상당히 깊숙이 귀를 기울인바 있었다. 「사우디」는 미국의 그와 같은 「제스처」에 솔선해서 「푸른 신호」를 보여준 것이다. 또 「이스라엘」은 그들 나름으로 수상의 사임 같은 정치적 신호를 보여 주었다.
「야마니」 석유상은 이런 일련의 일들을 다짐하는 뜻으로 막간에 잠시 적신호의 「버튼」을 눌러 보인 것 같다.
따라서 OPEC의 와해 위기설은 너무 성급한 진단인지도 모른다. 「아랍」세계의 정치술이 그만큼 능란해졌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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