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 입은 「타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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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최근 신문에 눈길을 끄는 외신전송사진이 하나 실렸다. 「타놈·키티카촌」 전 태국수상이 가사를 걸치고 삭발을 한 모습으로 사원에 앉아 있는 모습. 기라성 같은 훈장이 주렁주렁 매달린 원수의 복장에 검은 안경이나 써야 어울릴법한 인상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태국학생운동의 본거지인 「타마사트」대학에는 반「타놈」의 「포스더」가 붙고 또 비난성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종교를 이기적인 목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73년 학생혁명을 통해 그를 권좌에서 몰아냈던 정치감정은 아직도 식지 않고 있는 것 같다. 「타놈」은 73년10월 이후 대만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었다.
미국으로 옮겨 영주할 것이라는 소문이 사라지지 않은 가운데 그는 「보스턴」 등지를 전전하며 줄곧 귀국의 기회를 넘보고 있었다. 정작 74년12월엔 부인과 함께 서독 「루프트한자」여객기 편으로 귀국했었다.
태국의 정적은 일시에 긴장되었다. 육해공군에 비상령이 내리고 학생들은 그를 「제1급 범죄자」로 지칭했었다. 30일만에 그는 쫓겨나 그후 「싱가포르」에 머물러 있었다.
경로사상이 강한 태국의 국민감정은 더러 그에게 너그러운 면도 없지 않은 것 같다. 더구나 91세의 노부를 만나보고 싶다는 그의 호소는 감상적인 반응을 기대하고 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번에 그가 귀국하면서 불문에 입적, 한 수도승의 면모를 보여준 것도 필경 태국국민들의 「센티멘털리즘」에 호소하려는 심사일 것이다. 문전시주까지 다녔다는 것은 하나의「쇼맨쉽」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때 태국의 부정축재자산동결위원회는 그의 치부재산이 무려 4백만「달러」나 된다고 밝혔다. 지금 문전시주에 나선 그의 현실은 어딘지 고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부처님의 제자가운데 라다라는 청년이 있었다. 어느날 그는 부처님에게 「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라다여. 색은 고요, 수(감각)는 고요, 상은 고요, 행은 고요, 식(의식)은 고다.』
부처님은 이들 가운데 무상하지 않은 것이 없음을 상기시키며 『무상은 곧 고』라고 가르쳤다. 석가는 그 자신이 부유했고, 또 세속적인 행복가운데 살았지만, 출가 후에 고의 뜻을 비로소 터득한 것이다. 어리석은 범부들은 미처 깨닫치 못하는 「무상의 고」를 안 것이다.
한가지 「아이러니컬」한 것은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을 뒤늦게야 깨닫는다는 사실이다. 「타놈」도 권좌 위에서 그런 것을 일찌기 터득했다면 유랑망명인의 신세는 면했을 것이다. 그의 심중에도 지금 그런 생각이 있는지는 헤아릴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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