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구호와 의료보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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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저소득층에 대해 의료혜택을 넓혀주는 시책을 둘러싸고 아직도 관계부처간의 견해 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우려되는 것은 이런 견해 차이가 단순한 기술적 문제 때문이 아니라, 시책의 골격을 이루는 근본문제와 연관되고 있는 점이다.
일견해서 보사부가 추진하는 방향은 애써 형식적인 요건을 먼저 구비하려는 느낌이며, 신중을 기하려는 기획원 쪽은 현실적 여건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생각들은 사회보장의 참뜻에 비추어 모두가 옳지 않다. 의료시혜의 긴요성이 아무리 시급하다해도 충분한 사전 준비나 내실이 없이 서둘러 형식이나 제도만 그럴듯하게 꾸며놓는 일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러나 그 반대로, 언제까지나 현실과 여건에 지배되어 정책적 개혁의 의지가 약화되는 사고 방식에도 문제가 없지 않다.
보사부가 서둘러 성안한 「국민의료시혜확대방안」이 정부간 협의과정에서 크게 수정되거나 축소되고 있는 현실은 한마디로 그 어느 쪽도 의료보험문제의 본질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확고한 정책의지가 결여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적어도 하나의 사회보장제도가 확립되기 위해서는 장기간의 검토와 제반 사회경제적 여건은 물론, 방대한 재원조달방안이 아울러 강구되지 않으면 안된다. 사회보장제도란 본래 한 두 부처만의 즉흥적 구상이나 일시적인 재원 염출만으로 지탱하기는 힘드는 것이다. 이점, 보사부의 「방안」은 의욕적이기는 하나 신중성을 잃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무엇보다 이 제도의 근간을 이루는 「기금」의 확실한 조달계획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막연히 정부보조와 지망자치단체출연으로 확보한다고 되어 있으나 이들의 출연이 얼마나 실현될지는 아무도 예견하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연차별 출연계획이 세워지지 않는 한, 기금확보의 불확실성은 이 제도의 근본적인 제약으로 남게될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이를 해결하는 길은 결국 의료보험을 사회보장의 차원에서 다루는 길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4차 계획의 기본계획안에 이를 흡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4차 계획이 마무리되고 있은 지금까지도 소위 사회개발의 구체적 함축은 가늠하기 어려운 실정이지만 아마도 생활보장적 개발체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시급한 의료보험을 사회개발체계에 흡수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 아닐 수 없다.
지금 계획처럼 그때그때 재정형편에 맞추어 임시변통으로 꾸려나가겠다는 생각이라면, 그것은 제도적인 의료보험이 아니라 취로사업에 노임을 살포하는 식의 구호적 지출의 성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또 의료시설과 인력분포가 지역적으로 불균형을 이루는 현실도 이「방안」의 실효성을 제약하는 요인이다.
이런 불균형의 시정이나 보건소·지소의 인력확보문제는 의료전달체계의 재편성이나 예산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
한편 당초 계획되었던 의료보험제도는 협의과정에서 크게 후퇴하고 말았지만, 지금 같은 임의가입체제로는 의료보험의 구실을 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동시에 재정의 부담 없이 사용자와 근로자, 또는 가입자의 부담만으로 의료보험을 운영하는 것은 사회보험의 본뜻에도 어긋난다.
모처럼 정부가 성안한 이번 계획은 저소득 층의 의료혜택을 늘리기 위한 획기적인 시책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이처럼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다. 결국 이 계획은 기본방향을 「구호」의 차원에서 「보험」외 차원으로 높이는 일이 필요하여 이는 정부 부담의 확대로써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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