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발행위를 범하지 않을 책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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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8·18 판문점 도끼살인으로 빚어진 유엔군측과 북괴간의 분쟁은 6일 양측이 공동경비구역 분할경비에 관한 합의에 서명함으로써 일단 매듭지어졌다. 비무장지대의 분규가 결과적으로 양측의 대화를 통한 협의로 매듭지어졌다는 사실은 경위가 어떻든 의미 있는 일이다.
8·18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북괴는 두가지 주목되는 조치를 취했다. 그 하나는 지난달21일 김일성이 이번 사건에 유감의 뜻을 표시한 것이다. 그 내용이나 사용된 용어는 비록 만족스런 것은 아니기만 휴전이후 최초로 김일성이 유엔군 사령관에게 이러한 뜻을 전달했다는데서 정치적으로는 의미가 적지 않다. 둘째는 이번에 서명된 합의문서를 통해 공동경비구역의 자기측 부분에 합법적으로 들어온 상대측 인원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보장하기로 한 것이다. 그 책임이 쌍무적이긴 하지만 북괴측이 문서로 공동경비구역에서의 유엔군측 인원의 안전보장책임을 확인한 것은 주목할만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북괴의 두가지 조치가 곧 앞으로 또 다른 도발이 없으리라는 보장은 되지 못한다. 이른바 『남조선 적화혁명』이란 북괴의 기본목표가 바뀌지 않는한 북괴의 도발책동은 끊임없이 시도될 것이다.
다만 이번 사건을 통해 확인된 것이 있다면 북괴의 도발야욕을 꺾는 길이 오로지 우리측의 단호한 대응자세 뿐이라는 사실이다.
북괴가 이번 사건 해결과정에서 전에 없이 유화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순전히 한·미 양국의 대응조치가 단호하고 신속했기 때문이다. 북괴는 미루나무 절단작전 등을 통해 한미 양국 정부의 이번 사건에 대한 대응자세가 단호함을 확인했던 것이다. 그래서 북괴는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김일성이 유감메시지를 전달함과 동시에 실무적인 협의자세로 나오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한미 양국 정부는 판문점에서 합의문서의 교환과 때를 같이해 장래 북괴가 어떠한 도발행위도 범하지 않아야 할 책임을 강조하면서 북괴의 도발에 대한 단호한 대응결의를 표명했다. 이것은 어떠한 문서보다도 한미 양국의 단호한 대응자세만이 북괴의 도발을 분쇄하는 담보임을 천명한 것이다.
사실 북괴와의 어떠한 합의문서도 그것이 힘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한 한낱 휴지화할 위험이 크다. 지난53년 휴전협정이 체결된 이래 북괴는 무려 3만5천건이 넘는 협정위반을 기록하고있다.
이러한 북괴를 상대로 하는 것인 만큼 그들과의 어떠한 문서적 합의가 있었다해서 그것에 감상적 기대를 거는 것은 금물이다. 어떤 합의가 이뤄졌다는 것은 상호간의 불신이 극에 이른 상황에서도 대화를 통한 합의가 이뤄질 수 있다는 사실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지, 그것으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판문점사건도 합의문서의 교환으로 일단 한고비를 넘겼지만 실상 문제는 지금부터다.
이번의 합의문서를 북괴가 그들의 편의대로 악용할 위험성은 그들의 과거행동으로 보아 언제든지 있다고 봐야한다. 또 그것은 자칫 한반도에서 오직 한 귀퉁이 남았던 중립지대마저 긴장의 대치지대로 바뀔 가능성마저 있다. 이렇게 된다면 이것은 현상의 개선이 아니라 개악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현상의 개악을 막고 이번 합의의 취지를 살리자면 우리측이 합의이행에 있어 항상 이니셔티브를 잡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한 이니셔티브는 오로지 한미 양국의 방위태세와 능력이 북괴를 능가할 때에만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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