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고생 우대 안의 자기모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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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7일 문교부가 발표한 이른바「실업계고교 우수졸업생 우대방안」이 과연 옳은 실업교육 진흥방안이 될 수 있을까. 유감 히도 우리의 견해는 회의적이라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당국이 설명하는『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우수기능인력을 양산』하기는커녕, 이론과 실기 그 어느 쪽에도 철하지 못한 범 재만을 양산할 우려가 짙기 때문이다.
도시, 실업계고교와 실업계대학의 근본적 차이는 무엇인가. 양자 모두가 실업계 교육기관이라는 데는 이론이 없겠으나 전자의 우수졸업생을 후자가 특혜 입학시킴으로써 우수한 기능인력이 양성된다는 설명에는 분명히 큰 비약이 있다.
교육법의 명문규정을 들출 것도 없이, 실업계고교는 중학교육의 기초 위에 고등보통교육과 전문교육을 실시함으로써 이를테면 중견급의 기능 자를 양성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에 비겨 실업계대학은 대학교육의 일반목적에 좇아 지도적 인격을 도야함으로써 이른바 기사 급 인재를 양성하는 기관이라 할 수 있다.
이 두 교육기관 졸업자의 차이, 즉 technician과 engineer사이에는 결코 메워질 수 없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보아야 하겠으며, 산업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이 양자가 제각기 독자적으로 그 고유한 역할을 다해야만 되는 것이다.
실상, 오늘날 한국 실업교육의 문제점은 바로 이러한 본질적 차이를 명확히 인식치 못하고, 그 두 가지 유형의 기술 인력 중 어느 쪽도, 충분한 기능분화를 하지 못하고 있는데 있다 해야 할 것이다. 실업계 고교의 우수졸업생을 실업계대학에서 특혜 입학시켜야 한다는 발상이 바로 이 같은 혼동에서 온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실업계고교의 우수졸업생이 만일 참으로「우수」의 이름에 해당하는 우수기능자라 한다면, 국가는 그들의 대학진학으로 말미암아 초래될 국가적 손실, 즉 산업인력 면에서의 기능저하 내지 기능 자 이탈을 막기 위해 오히려 이들을 붙잡아 두기 위한 특별대책을 세우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이들에게는 신분상 또는 처우 면에서의 우대조처를 따로 마련해 줌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계속 산업인력으로서의 기술축적을 가능케 해야 할 것이며, 장차 희망에 따라서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더라도 충분한 고등교육 기회를 줄 수 있도록 시급히 적절한 성인사회교육 채널을 따로 마련해 주어야 할 것이다.
반면, 실업계대학에서 양성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이 나라 산업계의 기술혁신에 앞장설 수 있는 지도적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비록 기능적 숙달 도는 미흡하더라도, 오히려 넓은 일반교양과 기초과학의 토대 위에 선 독창적인 사고와 기술개발능력을 기르도록 힘쓰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사리가 그러하다면, 실업계 고등학교 전학생들에게 부질없이 대학진학에의 유인을 주어 기능연마에 큰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대학입시 특전을 실업교육 진흥의 한 방안으로 내 놓았다는 것은 아무래도 자가당착이 아니겠는가.
단선형 교육제도를 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원칙적으로 실업계고교 졸업자의 대학진학을 억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질과 능률을 생명으로 삼는 교육에 관한 한, 대학에의 통로는 되도록 좁게 제한해 두는 것이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유익하고 낭비를 막는 길일 것이다.
때때로 비민주적 또는 비교육적이라는 비판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영국이나 서구제국의 교육제도가 비교적 어린 나이에서의 선별과정을 통해 미리 인문·실업계 진학 자를 엄벌케 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비단 이 문제에 국한된 일은 아니지만, 근자 우리나라의 행정이 자칫 원칙과 정도를 소외하고 오히려 예외와 편법 위주로 흐르는 경향이 있음은 우려할 만한 일이다.
실업계교육의 진흥을 논하면서 실업교육의 내실을 보다 충실히 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이나, 보다 효과적인 산학연계체계의 수립과 같은 정도는 외면한 채, 고작 대학입시에의 특혜조처 같은 기교를 앞세우는 작태가 바로 그 전형적인 사례가 아니고 무엇인가.
문교부는 특히 교 학의 본질인 원칙의 신봉자가 되어 주어야 하겠으며, 기술·기능인력 개발문제에 있어서도 양 토를 쫓다가 모두를 놓치고 마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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