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의 도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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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요즘은 어느 학교의 칠판이나 모두 녹색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안과 의사의 말로는 녹색보다는 청색이 더 눈에 좋다. 또한 백묵 글씨도 더 선명하게 보인다.
그러나 칠판은 으례 녹색이어야 눈의 피로를 덜 해준다고 누구나 믿고 있다.
다분히 여기엔 심리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 우선 녹색은 청색보다 훨씬 따스한 느낌을 준다. 또 녹색은 나무와 풀에 대한 사람들의 갈증을 풀어 준다.
지난 5일 강남지구를 돌아본 박 대통령은 체육관이나 운동장도 좋지만, 주택 단지의 주변환경을 푸르게 하는데 더 힘쓰라고 지시했다.
올바른 도시 계획이라면 의당 녹지 계획이 따라야 했던 것이 아닐까.
도시민의 생활에 있어 녹지대란 공기나 물과 마찬가지로 불가결한 것이다. 그것은 도시 미관을 위해서도 배기 「개스」나 소음을 막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우리가 참고로 삼아야 할 본보기는 서구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가령 「함부르크」는 서구에서도 가장 붐비는 항구 도시다. 따라서 밤이면 도시의 반쪽은 완전히 환락가로 변한다. 그러나 그 「함부르크」는 또하나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곳 도심지에서 「알스터」호에 이르는 지대는 온통 녹색으로 뒤덮인 조용한 공원이나 다름없다. 끝없이 펼쳐진 잔디 사이에 3차 선이 뻗쳐 있어 「함부르크」 시민들은 이 길로 일하러 나간다.
영국의 대 「런던」 계획에서도 녹지대가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46년부터 「런던」의 인구가 파상적으로 분산되어 나가면서 「뉴타운」을 세울 때마다 그 사이 사이에는 반드시 넓은 녹지대를 마련했다.
단순히 나무만 심어놓은 것이 아니다. 나무를 아름답게 가꾸기 위한 예산도 아끼지 않는다. 서「베를린」같은 도시에서는 심지어 자기 집의 정원수를 자를 때에도 시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것을 아무도 지나치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몇해 전에 미 「브랜다이스」 대학에서 한가지 실험을 한 일이 있다. 추악한 방과 아름다운 방 둘을 만들고 학생들을 둘로 갈라 넣어 일하게 했다.
실험 결과는 꽃으로 아름답게 가꾼 방에서 일한 학생들보다 더러운 방에서 일한 학생들이 더 빨리 일을 끝마쳤다.
아름다운 환경이 사람을 게으르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 속에서 나오기를 싫어할 만큼 안락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도시는 일만 하는데가 아니다. 그 속에서 어린이들이 뛰놀고. 여인들이 씩씩하고 아름다운 아이를 낳는 꿈을 꾸고, 또 이들을 위해 남자들이 내일을 설계하는 것이다.
이런 도시가 숨막히는 환경으로 남아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의 수도 서울도 사막위에 세워진 「바그다드」처럼 마냥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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