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들의 북한관의 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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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가 일목을 보는 눈이나 일본인이 한국을 보는 눈에는 이성보다도 감정이 끼어 드는 정도가 유별나다.
역사적으로 한일 관계는 도움을 받기보다는 우리가 일방적으로 괴로움을 받은 관계였다. 우리 민족은 일본에 문화를 전수하는 교량역을 했지만 일본은 때에 따라 왜구 또는 침략 전쟁의 형태로 우리를 괴롭혔고 급기야는 36년간의 식민 통치라는 치욕을 강요하기까지에 이르렀었다.
그런 역사적 과정에서 양국 국민간에는 결코 호의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특이한 선입견이 형성되었다. 꼬집어 말하기는 힘들지만, 우리가 일본을 보는 눈에는 항상 강한 경계심과 막연한 우월감이 뒤섞여 있다 할 수 있겠다. 이에 상응한 고정 관념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우리를 공연히 얕잡아보고 꺼림칙한 기분을 느끼는 그들 나름의 근거 없는 우월감이 있는 듯하다. 간혹 개중에는 불행한 과거 때문에 마음의 빚을 느끼는 사람도 없지 않지만 그런 보상적 호의란 것이 오래 갈리는 없다.
역사의 침전이랄 수 있는, 서로간의 이런 유별난 감정 상태가 해소되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시대가 요구하는 보다 새로운 차원의 협력 관계를 형성해 나가기 위해선 양국 국민이 모두 전기한 바와 같은 사시적 태도나 희고적 감정에만 얽매어선 곤란하다. 두 나라 관계에서 서로를 보는 눈을 순화해 가고 감정의 착색을 극복해 가는 노력이 기울여지지 않으면 안될 이유다.
이를 위해 특히 우선적으로 시정되어야 할 기이한 현상이 한 가지 있다. 다름 아닌 일본인들의 편향된 남·북한관이다. 잘못된 남북한관이 형성된데는 스스로 진보적임을 자처하는 일본 「매스컴」과 일부 좌경 일본인들의 죄가 크다.
일본과 똑같은 개방 민주 사회인 한국의 사회적 문제점이나 취약점들이 일본인의 눈에 잘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는 하다. 반면 철저한 봉쇄사회인 북한은 외부에서 그 안을 들여다보기가 극히 어렵게 되어 있다. 설혹 북한을 가본 사람들이라 해도 미리 선정된 곳에서 따로 선정된 사람만 만나고서야 그 사회의 문제점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더구나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북한에 가 볼 수 있는 「특혜」를 잃지 않으려는 공리성은 북한 사회를 마치 낙원처럼 그릇 묘사하고 보도하는 또 다른 원인이 되어 왔다. 또 일부 지식인들의 소아병적 좌경 성향이 곁들여 일본과 같은 개방 민주 사회인 한국의 문제점을 과도하게 비판하면서 반대로 공산주의 사회인 북괴를 미화하는데서 묘한 쾌감을 느끼는 자학 취미도 작용했다. 이렇게 해서 남북한을 재는데 2중 기준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과 전혀 다른 그릇된 남북한관이 무한정 통용될 수는 없는 일이다. 4일자 일본 「상께이」 신문은 근래에 와서 일본인들의 이러한 그릇된 남북한관이 상당히 고쳐지고 있다고 했다. 외채 상환 불능 사태가 보여준 북괴 경제의 파탄상, 김일성의 개인 숭배와 정권의 세습화 기도, 남침 땅굴에서 드러난 북괴의 침략성 등이 일본인들의 북괴에 대한 미망을 깨우치게 한 이유라는 것이다.
최근에는 일본 언론의 대한 보도 자세의 편향성도 조금씩 개선되어 가는 기미가 보인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가 보기에 일본 언론의 편향성이나 일본인들의 대한 편견이 제대로 시정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우리는 일본인들이 우리를 사실 이상으로 미화해 주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객관적이고 평형된 안목을 키워 가기를 바랄 뿐이다. 그것이 한·일 관계의 발전을 위해서만 아니라, 민주 사회의 일원으로서 일본 지식인이 마땅히 취해야 할 태도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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