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례 받는 코뮤니스트…이것이 이탈리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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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베니스」가「이탈리아」가 낳은 기적이라면「방코·산토·스피리토」도 이 나라 아니면 낳기 어려운「기적」의 하나로 쳐줘야 한다. 『방코…』?. 물론 은행 이름이다. 우리말로 그대로 옮기면 성심은행쯤 된다. 성심병원이면 병원이지 어떻게 성심 밑에 은행자가 붙는단 말이나, 하면 그건 서울식 소리다. 버젓한 은행이고「이탈리아」어디가나 있다.
성심이 어쩌다가 은행에까지 손을 대게 됐는가를 알긴 어렵다. 아마 성심처럼 믿을 수 있는 은행이라는 것쯤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걸 여기서 알려고 할건 없다. 얘기는 성심은행이라는 간판들이 천연덕스런 풍경을 이루고 있고 그게 조금도 이상하게 여겨지질 않는다는 것이다.
하여튼 성스럽고, 속스럽고, 아름답고 지저분한 것들이 이 나라 빈대떡「피자」양념 거리처럼 범벅이 돼 하나의 독특한 맛을 이루고 있는게「이탈리아」다. 「산타·마리아·노바」이름이 붙은 이 기관에 머리를 깎으러 갔을 때였었다. 깎는게 아무래도 날림 공사처럼 대강대강이기에 뭐가 쫓아오고 있느냐고 하니까, 대답인즉슨 그날 저녁이 바로 관장님 여섯째딸이 교회에 가서 첫 세례를 받는 날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관장님으로 말하면 떨어지긴 했지만 한때 공산당 후보로 시의원에 출마를 해본 경력까지 가졌다는 이 기사의 보충설명이 있었다.
그럼 필경 공산당원이겠는데 딸을 예배당에 가서 세례를 받게 한다? 독자들처럼, 기자에게도 이런 당연한 질문이 떠오르긴 했으나 꾹 참고 입밖에 내지 않았다. 그건 그런 질문을 했다간『이 동양친구, 역시 몹시 무식하구나』하는 소리를 듣거나, 그렇지 않고『그게 왜, 이상하냐?』고 되물어 오면 서로 외국어가 서투른 처지에 입장이 힘들어질 것 같은 이유에서였었다.
「코뮤니즘」과「가톨리시즘」간의 소위「위대한 타협」이란 것은 이 붉은 이발 관장의 경우, 저도 모르게 돼 있었다. 꿈으로나 쳐둬 버리면 그만이다. 그게「이탈리아」다.
나갈 때 이발 값으로 9천「리라」(약3천5백원)를 내라 하기에『웬게 그리 비싸냐』하니까 그 붙임성 좋은 이발사가 콧수염 밑에 하얀 치열을 활짝 웃어 벌리며 하는 이런 말에 저항할 방도를 찾지 못했다. 『아니 관장님 잔치 집에 빈손으로 갈 수는 없지 않은가.』 그것도「이탈리아」다. 【로마=박중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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