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피린」은 상표가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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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아스피린」은 일반 약품명이지 특정업체의 상표가 아니다.』 진통·해열제로 널리 알려진 「아스피린」의 상표권을 둘러싼 법정시비가 엎치락뒤치락 3년 끝에 상표권자인 독일 「바이엘」약품(판매원·한국「바이엘」약품)의 패배로 끝났다.
대법원특별부는 25일 일성신약(용산구 원효로1가 44의7)과 합동정밀주식힉사(영등포구 신길동 2의3)가 「바이엘」약품을 상대로 낸 상표등록취소청구소송 상고심 공판에서 「바이엘」측 상고를 기각, 『「바이엘」약품의 「아스피린」상표등록을 취소한다』는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바이엘」약품은 한국 내 「아스피린」시장에서의 독점권을 잃게 됐으며 이제 아무 제약회사라도 「바이엘」약품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아스피린」을 자유로이 생산, 판매경쟁을 벌일 수 있게 됐다.
「바이엘」약품은 한때 한국 제약업계에 「아스피린」공포증을 일으킬 만큼 사사건건 소송사태를 빚어 17년동안 독점권을 행사해 호황을 누려왔다.
법정시비의 시작은 73년 말 「바이엘」측이 「아스피린」을 만들어 판 27개 국내제약회사 중 상품포장에 영어 혹은 국문으로 「아스피린」이란 표기를 한 합동정밀·일성신약·국제약품·구미약품·한성제약·대동제약·태창제약 등 7개회사를 상대로 차례로 상표사용금지청구소송을 서울민사지법에 냄으로써 비롯됐다.
「바이엘」약품은 59년 1월 상공부특허국에 「ASPIRIN」과 「아스피린」으로 상표등록을 한 뒤 69년 2월 등록경신을 하고 최근까지 상표권을 인정받아왔다. 「바이엘」은 한독약품과 기술제휴, 제조는 한독약품이, 판매는 한국「바이엘」회사가 하도록 했으며 신문광고 등에는 「바이엘·마크」와 한독약품명을 함께 썼다.
상표의 특허권을 인정받던 「바이엘」은 상품사용금지소송에서 완승했다. 일성신약 등 7개회사가 모두 『귀사의 상표를 도용해 대단히 죄송하오며…다시는 귀사의 성가를 떨어뜨리는 짓을 않겠다…』는 사과문을 신문에 게재하는 쓰라린 패배를 맛 봤던 것.
합동정밀 등이 「바이엘」의 승승장구에 「브레이크」를 걸고 반격에 나선 것은 74년 5월. 특허국심판부에 「바이엘」의 「아스피린」상표등록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이들은 국어대사전에 설명되어있는 바와 같이 「아스피린」은 「아세틸살리칠」산으로 만드는 진통·해열제의 일반약품명일 뿐 특정인의 등록상표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보사부집계에 의하면 72년의 경우 한국내 27개 제약회사가 1억8천만원어치의 「아스피린」을 생산한 것으로 미루어 특정업체에 이의 상표권을 부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이 가장 주안점을 두고 주장한 것은 『자기 상표와 같은 상표를 타인이 사용하는 것을 묵인했을 때는 등록상표의 취소사유가 된다』는 상표법23조의 규정. 한독약품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바이엘」측은 ▲국어사전의 정의는 잘못된 것으로 「인단」이 한국양행의 등록상표로 인정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스피린」은 「바이엘」의 독점상표며 ▲한독약품에 대해서는 정부의 허가를 얻어 기술제휴만 했을 뿐 상표 사용을 묵인한 것이 아니며 ▲앞의 사실은 신문 광고에 반드시 「바이엘·마크」를 크게 싣고 「한독」의 표시는 적게 한 것으로 입증되고 ▲따라서 「바이엘」은 한독약품에 「아스피린」을 선전, 확포하기 위해 상표를 「라이선스」한데 불과하다고 맞섰다.
그러나 특허국심판부의 1, 2심 결과 대법원판결은 『미국·일본에서도 「아스피린」은 진통·해열제의 상품명으로 쓰이고 있고 「바이엘」이 한독약품과 함께 선전한 것은 자기상표의 사용을 타인에게 묵인한 것으로 봐야하므로 상표법의 취소조항에 해당된다』는 것이었다. <전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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