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제국의 줄타기 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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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4월28일「멀둔」「뉴질랜드」수상의 중공방문에 이어 5월10일에는 다시 이광요「싱가포르」수상이 북경을 방문했다.
그로부터 20일이 지난 5윌31일엔 다시「마르크스」「필리핀」대통령이「모스크바」를 방문함으로써「아세안」을 무대로 한 소·중공의 각축에는 또 하나의 기복이 일어났다.
이와 같은 움직임들은 모두가「인도차이나」적화 이후의 동남아와 남태평양에 대한 미·소·중공·「하노이」의 상충하는 전략과 그에 대한 이 지역국가들의 대응책의 일단인 것이다. 「사이공」실함 직후부터「모스크바」는 월맹·「라오스」에 착실한 세력기반을 굳히는 한편,「홍콩」·「싱가포르」·태국에의 정보공작 망의 부유, 남태평양의「통가」왕국과「뉴질랜드」근해에서의 기항 권 획득기도를 통해 급격한 남진자세를 노골화했다.
이러한 소련 세의 남진에 대해 중공은「아세안」제국과 대양주 및「피지」·「파푸아-뉴기니」와의 한 발 앞선 친교를 통해 이 지역을 반소 적인 중립지대로 정착시키려는 방법으로 응수하여 왔다.
「아세안」의「독립·평화·중립」을 지지해 주는 것은 비단「소련패권주의」의 남진뿐 아니라 친 여「하노이」권의 팽창주의까지도 저지할 수 있는 이중의 효과를 발휘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동안「하노이」는「아세안」의 우호제의를 묵살하고 오히려 이 지역에 제2의「인민전쟁」이 확산되는 것을 전제로 한「동남아 공동시장 논」이란 것을 내세워「아세안」과 중공의 경계심을 고조시켜 왔었다.
따라서「파라셀」군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아세안」내의 미군기지 철폐를 요구하면서 친소노선을 걷는「하노이」의 적대행위에 대해 중공과 「아세안」은 미묘한 공동접점을 마련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중공은「아시아」-태평양지역의 미군사력이 대소 견제 력으로 존속하는 것을 바라고 있는 터이며 이것은「포드」미국대통령의「신 태평양·독트린」과도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는 만큼 이광요·「멀둔」수상의 방중은 미국의 은근한 양해로 뒷받침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심지어 미국은 「인도네시아」상권 국 합의를 통해「자카르타」와 북경의 화해를 종용하고 있다는 설마저 나돌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지난 5월19일「말리크」외상은 지금까지의 강경 자세와는 달리 돌연『중공과의 수교는 시간문제』라는 발언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의 다른 한 면으로는 이광요 수상이나「마르코스」대통령은 소련과의 관계를 두고서도 독자적인 행동의 자유를 유보하려 하고 있다.
이광요 수상은 중공을 방문하기 앞서「모스크바」에 사전 양해 같은 것을 구했다고 하며, 「마르코스」대통령도「모스크바」에 가기 앞서『반 중공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다짐을 강조했다고도 한다.
여기에「아세안」각 국의 중립외교가 내포한 취약성이 엿보인다. 그들의 중립외교란 힘의 축적에 바 탕한 자주외교라기보다는 곡예술과 눈치작전을 대상으로 하는 줄타기 외교라는 인상이 짙은 것이다.
더구나「아세안」각 국의 국가이익이나 경제발전의 진도도 서로 다른 마당에 무질서하고 성급한 탈 미국 또는 미군기지 철폐란 자칫「하노이」와 국내「게릴라」의 호전성만을 조장할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참다운 중립이니 자주니 하는 것은 그렇게 할 수 있을 만한 국력이 축적된 연후에나 가능한 것이지, 현대 국의 외교사령이나 곡예술로 지탱되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아세안」제국은 행여 성급하게 자신의 울안에 공산 현대 국들의 그림자룰 끌어들이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며 우선 모든 자유「아시아」국가들과의 결속을 강화해 범 태평양 적인 안보대책부터 세워 두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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