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록히드사 기는 「과부 제조기」다"|서독 조종사 유족들 다시 손배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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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국 「록히드」사로부터 도입한 「스타·파이터」 전투기의 잇단 추락 사고로 희생당한 서독 공군 조종사 유가족들은 최근 「록히드」·증뢰 사건 전모가 계속 밝혀지자 새로운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할 움직임을 보여 관심을 끌고 있다.
서독에서는 지난 61년 「록히드」사에 「스타·파이터」를 대량 주문할 때부터 석연치 않은 뒷말이 있었고 추락 사고가 잇닿자 뇌물 수수설까지 나돌았다.
당시 고 「아데나워」 수상의 신임을 받던 「슈트라우스」 국방상 (현 기사당 당수)은 서독 공군의 주력 전투기 선정에 충분한 검토 없이 일시에 한 사에 대량 주문해서는 안 된다는 반대론자들을 친공 분자 내지 반미주의자로 몰아 붙이면서까지 「록히드」사로부터 「스타·파이터」를 도입하기로 결정했었다. 그 후 줄곧 서독과 미국에서는 그 이면에 뇌물 거래가 있었을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고 서독의 신문·잡지들은 거의 신빙할만한 증거를 제시하면서 「슈트라우스」와 기사당이 「록히드」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았다고 보도했었다. 이에 대해 「슈트라우스」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뇌물 수수설은 정치적 모략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스타·파이터」의 잇단 추락 사고는 서독 국민들에게 뇌물 수수에 대한 의구심을 더하게 했으며 전문가로 구성된 조사 위원회가 추락 사고의 원인이 단순한 조종사의 실수가 아니라 「록히드」의 제작 「미스」였음을 밝혀내자 「슈트라우스」의 전횡에 대한 원망을 불러일으켰다. 서독 공군이 90억「마르크」 (약 1조8천억원)를 들여 도입한 「스타·파이터」는 모두 9백16대로 이 가운데 1백78대가 추락, 조종사 88명이 목숨을 잃어 「스타·파이터」는 「과부 제조기」란 악명을 남겼다.
한편 희생자 유가족들은 지난 71년 추락 사고의 원인이 제작 미스에 있음을 들어 「록히드」사에 보상금 청구 소송을 재기, 5년간의 법정 투쟁 끝에 작년 10월 1백20만「달러」의 원고 승소 판결을 얻어냈다. 유가족 측 변호사 「멜빈·벨리」는 보상금 액수가 너무 적으며 서독 정부가 자료 제출 및 증인 출두에 미온적이었다고 불평했다.
그는 조사 과정에서 「스타·파이터」의 조립 과정에 잘못이 있었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록히드」사에 납품된 부품에 「미스」가 있었던 것이 발견되어 앞으로 부품 생산 회사를 걸어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할 것이며 「록히드」사에 대한 새로운 소송 제기도 배제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원고 승소 판결이 내려진 이면에는 금년 10월 서독 총선을 앞둔 「슈트라우스」와 기사당이 재판이 선거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여 「록히드」사에 협조를 요청했다는 후한도 나돌고 있다. 계속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슈트라우스」는 미국 의회 조사에서 서독 문제를 특별히 다뤄 줄 것을 「키신저」 국무장관에게 부탁했고 측근 인사를 파견,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이는 「록히드」 증뢰 사건이 서독 총선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과연 미 의회가 「슈트라우스」와 기사당이 「록히드」사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사실을 공표할지는 미지수나 만약 공표 된다면 「아데나워」 이후 「슈트라우스」의 협조 없이는 수상이 될 수 없다는 막강한 실력을 과시해온 수상 「메이커」 「슈트라우스」의 정치 생명은 끝나게 될 것 같다. 【프랑크푸르트=엄효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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