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스탈린」주의선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소련공산당 25차 전당대회는 한마디로 「스탈린」의 망령이 주재한 연회였다.
장장 6시간에 걸쳐 늘어놓은 「브레즈네프」의 장광설도 딱 한마디로 꼬집어 말하자면 일종의「네오·스탈린」주의선언 같은 것이다.
「브레즈네프」는 연설을 통해, 지구상에 현존하는 거의 모든 비「모스크바」적 경향에 대해 일괄 「파문선고」를 내리는 듯 보였다. 「크렘린」의 사고방향과 조금이라도 다른 사고와 행동은 무조건 평화와 사회주의와 「데탕트」의 적이라는 식이다.
미국 안의 현실주의적 전략가들을 그는 『국제적 긴장완화를 해치려는 자』들이라고 비난했다. 그의 교조적인 두뇌로써는 「포드」행정부에 반대하는 미국의 야당적 견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 사회에서는 반대당이란 곧 죄수를 뜻하기 때문이다. 「브레즈네프」는 또 서구 공산당의 이탈에 대해서도 『「프롤레타리아」독재를 포기하는 것은 기회주의적 과오』라고 비난했다.
「모스크바」의 종주권을 부인하는 공산당이란 생각할 수도 없다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혁명은 자위의 방법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로써「포르투갈」공산당의 교조주의만은 애써 옹호해주는 것을 잊지 앉았다.
결국 혁명이 일어난지 60년이 경과했어도 소련공산주의의 이단 박해 벽은 그대로 남아있는 셈이다.
이런 식으로 이세상 모든 것을 깡그리 부정해 놓은 다음「브레즈네프」가 의기양양하게 긍정한 것이라곤 「데탕트」추구와 「앙골라」지원을 계속하겠다는 말뿐이었다.
「크렘린」이 긍정할 수 있는 일이란 오직 세계의 적화 하나뿐이란 말이다. 그것은 아주 솔직한 고백이기는 하다.
「크렘린」이 말하는 「데탕트」는 19세기초에 「나폴레옹」이 말한 정복철학과 똑같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나폴레옹」은 『나는 「유럽」의 세력균형을 지탱하는 지렛대이며 그것이 나의 뜻대로 기울어지도록 조종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오늘의「크렘린」역시 그와 마찬가지다. 미·소「데탕트」로 미국의 핵 전력에 올가미를 씌운 다음 「앙골라」와 「인도차이나」·중동 등 여타지역에서는 적극적으로 혁명을 지원해 급기야는 전세계적인 역관계를 뒤집어 놓겠다는 속셈이다.
그러면서도 「브레즈네프」는 세계적인 규모의 무력 불 행사 협정을 맺자는 식의 연막전술을 쓰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그러나 만약 그가 진심으로 전쟁을 원치 않는다면, 남북불가침협정을 외면하는 북괴의 호전성에 대해서는 왜 한마디의 언급도 없단 말인가.
또 모택동을 향해 「반 사회주의」라고 지탄한 「브레즈네프」는 어째서 북괴 김일성-김정일의 세습독재에 대해서는 「반 사회주의」딱지를 붙이지 않는 것인가. 「마르크스」나「레닌」의 원전에조차 나오지 않는 북괴의 세습적인 개인숭배가 같은 공산당으로서 창피하지도 않단 말인가.
그러나 이러한 질문은 결국 도로에 그칠 것이 뻔하다.
그만한 수치를 알 정도라면 오늘날 소련에는 그처럼 많은 정치범들이 정신병원을 메우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들의 존재는 오늘의 소련 시회상을 폭로하는 가장 신랄한 도덕적 지탄이 아닐 수 없다.
대회당일 발표된「사하로프」의 정치범석방요구 역시 「브레즈네프」 의 장광설보다 몇 배나 더 큰 설득력을 가지고 오늘의 소련을 대변해준다.
때문에 소련의 25차 당 대회 풍경이 세계의 자유인에게 줄 수 있는 「메시지」가 있다면, 그것은 곧 소련 공산주의의 위선과 비인간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