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과 학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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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원래 직원채용시험이란 학력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라 학력과 능력을 검정하자는 데 취지가 있다.
정부 각 부처 산하기관과 정부 관리기업체 직원채용시험에서 학력제한을 철폐하도록 한 최 국무총리서리의 지시는 바로 이 점을 분명히 했다는 데 뜻이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학력이란 학력과 인격수양을 가늠하는 하나의 척도일 수는 있다. 그러나 단정적인 판단을 내릴 근거는 되지 못한다.
우리는 역사상에서 정상적인 학교교육을 받지 못하고도 훌륭한 일을 해낸 지식 위인을 많이 보았다.
미국의 가장 위대한 대통령「링컨」이나 발명왕 「에디슨」이 국민학교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그 인격과 지식, 나아가서 인류에 대한 공헌을 낮게 평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구태여 역사상의 인물뿐만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도 학력은 낮지만 남다른 인격과 지식을 갖춘 사람은 적지 않다.
더구나 보통의 직업을 수행하는데는 높은 학교 교육에 의한 지식이 요청되지 않는게 일반적이다. 학교 교육은 또 대개는 직업실무에 직접 연결되지도 않는다.
한 때 구직난이 심해 5급 공무원 임용에도 대학학력이 요구된 적이 있었다. 이들의 직무란 대체로 머리보다는 손과 발을 많이 쓰는, 일상 반복되는 일이다. 그 직무를 수행하는데 대학교육이 필요하다고는 도저히 생각하기 힘들다. 오히려 높은 학교교육을 받은 사람에겐 보람상실과 좌절감만을 깊게 해주기가 십상이다.
그렇지만 학교교육이 사회활동을 해나가는 전반적인 능력을 향상시킨다는 것을 부인해선 안된다.
대개는 학력이 높은 사람이 학력도 좋은 게 보통이다. 학력 뿐 아니라 인간관계나 사고방식도 폭넓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력제한을 철폐한다고 해서 그것이 꼭 학력이 낮은인재의 사회진출문호의 확대로 연결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학력제한 철폐는 몇 가지 배려가 병행, 보완될 때라야 실효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채용자체에 학력을 철폐하더라도 급여체계 등 본질적인 호봉사정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의 격차가 불가피하다는 것조차 외면할 수는 없다. 이것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제도화하느냐는 신중히 고려되어야 할 문제다.
채용시험제도의 개선도 아울러 병행되어야 한다. 지금의 시험제도에는 해당 직무수행과 무관한 고도의 지식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상당히 있다. 이를 현실과 필요에 맞게 고치지 않는 한 학력제한 철폐조치의 효능은 반감할 것이 뻔하다. 또 업무에 따라선 고도의 전문교육을 받지 않고서는 수행하기 어려운 것도 있다.
지난72년 공무원임용상의 학력제한을 전반적으로 철폐하면서 예외 규정을 남긴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최소한의 예외가 전반적 학력제한 철폐조치의 취지를 흐리게 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학력제한 철폐란 원래 불필요하고 과도한 학력제한을 없애자는 것이지, 불가피한 학력제한마저 일률적으로 폐지해야 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이 모두가 학력제한 철폐를 민간단체 및 기업에 전반적으로 확대하려는 경우에도 꼭 배려되어야 할 것들이다.
학력제한 철폐조치는 교육제도를 비롯해 사회의 제도 및 풍토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최 총리도 지적했듯이 고등교육에 대한 사회적 이상 과열현상이 상당히 진정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경제의 빠른 발전이 교육된 인력이 많다는데 상당히 연유한다고 본다면 교육열의 냉각이 꼭 바람직한 것이라곤 말할 수 없다.
학력제한 철폐의 긍정적 평가는 교육열을 진정시키는데서 보다는 비록 소수일 망정 학력이 낮으면서도 상당한 학력을 갖춘 인재에게도 사회의 문호를 넓게 연다는 적극적인 면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에 대한 평가가 학력보다도 학벌에 좌우되는 사회기풍과 풍조가 순화되지 않고선 학력제한 철폐가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것을 잊어선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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