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플랜 코리아' 고인경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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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국민소득만 늘어 났으면 뭐합니까. 아직 우리나라는 은혜를 갚을 줄 모르는 나라인 걸요. 아직 멀었습니다."

고인경(高仁卿.58.파고다 아카데미 회장) 플랜 코리아(http://www.plankorea.or.kr) 회장은 " 플랜이 운영중인 나라 가운데 한국의 실적이 가장 나빠 매년 국제 총회가 열릴 때마다 다른 나라 대표들은 볼 면목이 없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플랜은 제3세계 국가의 어린이들을 양자(養子)로 삼아 후원하는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협력 NGO(시민단체)다. 1937년 스페인 내전 때 고아들을 돕기 위해 영국에서 출범했으며 현재 15개 나라에서 플랜이 운영중이다. 알고 보면 우리나라와 플랜의 인연은 깊다.

53년 한국전쟁 직후 플랜 본부가 남한에 '양친회(養親會)'라는 이름으로 진출, 79년까지 활동하면서 매년 2만5천명의 우리나라 불우아동을 도왔다. 당시 도움을 받은 이들 중엔 유수한 대학의 교수 등 성공한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같은 수혜국이었던 우리나라가 후원국이 된 것은 양친회가 철수한 지 무려 17년이 96년의 일이었다. 받은 만큼 베풀어야 한다는 당연한 진리를 너무도 오랫동안 잊고 산 셈. 가입 이후에도 국민 참여가 부족해 후원실적은 늘상 '꼴찌'를 면치 못하고 있다.

高회장은 "플랜을 맡은 뒤 주변 사람들에게 지긋지긋하게 가입을 권유하고 다녀 그나마 회원수를 7백여명에서 3천8백여명으로 늘렸다"며 "그래서 현재 돕고 있는 아이들이 20여개국 4천여명인데 우리처럼 수혜국이었다 후원국으로 변신한 스페인의 플랜이 3만여명을 돕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아직 창피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사실 자신의 말처럼 高회장은 2000년 플랜 코리아 회장이 된 뒤 주변 사람들을 여럿 '팔았다'. 외국어학원연합회 회장이라는 자리를 이용, '전국 학원 마다 한 어린이 돕기 운동'을 펼쳤고 파고다학원에 등록하는 수강생들을 상대로는 '수강료 1% 플랜 적립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高회장이 이처럼 플랜 코리아의 활동에 적극적인 데는 알려지지 않은 사연이 있다. 그는 출범과 함께 초대 회장인 오재경 전 문공부 장관의 강권에 못이겨 플랜에 가입했지만 '무성의한 회원'에 가까웠다. 후원금은 잊지 않고 보냈지만 플랜이 권장하는 수혜 어린이와의 서신교류 등 정서적 후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제3세계 아이들을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찾아왔다. 96년 학교폭력으로 하나뿐인 아들을 잃고 정신의 황폐함을 극복하기 위해 찾은 히말라야에서 한 네팔 소년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것이다.

"헐벗은 산악지대 아이들을 처음 본 건 아니었습니다. 그때도 그냥 못 사는 아이들이겠거니 생각하면서 걷다가 쓰레기 더미를 뒤지다 쓰러져 있는 아이와 눈이 마주쳤는데 눈매가 세상을 뜬 아들 녀석과 너무 닮았지 뭡니까. 그런데 놀라서 자세히 보니 그 아이의 숨이 곧 넘어갈 것 같았어요. 생각할 틈도 없이 인근 도시까지 8시간을 들쳐업고 뛰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다시 병원에 가보니 그 아이는 싸늘한 주검이 돼있었습니다." 高회장의 회상이다.

이후 귀국한 그는 플랜의 '열성신도'로 다시 태어났다. 네팔 방케에 사는 램(15)을 양자로 삼아 마을에서 유일하게 신발과 자전거를 가진 아이로 만들어주기도 했고 에베레스트 자락에 있는 힐러리 중학교 전교생 17명을 우리나라로 초청, 자신의 집에서 먹이고 재우며 관광을 시켜주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불어난 高회장의 자식들은 현재 네팔.베트남 등에 모두 59명이나 된다.

이제 高회장의 소원은 자신과 주변의 사람들뿐 아니라 온 국민이 다른 나라 어린이를 돕는 기쁨을 나누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흔히 '돈내는 일이 뭐 그리 기쁠까'하고 생각하겠지만 세계 곳곳에서 내 자식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는 기쁨은 친자식을 잃은 아픔을 덮을 만큼 크다"며 "인도적 차원은 물론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고양하는 데도 효과적인 길인 만큼 플랜에 많은 후원을 부탁한다"고 강조했다.

02-3444-2216~8.

글=남궁욱,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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