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민주주의는 나약하다|불 한림원 회원 「모리스·드뤼옹」씨 「르·몽드」지 기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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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아카데미·프랑세즈 (「프랑스」 한림원)」 회원인 「모리스·드뤼옹」씨는 최근 「르·몽드」지에 서구식 민주주의의 위기에 관한 논문을 기고했다. 「모리스·드뤼옹」씨 (58)는 「파리」 대학 문과를 졸업하고 「피가로」지 기자로 출발, 기고가로 활약하고 있으며 지난 66년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다. <편집자주>
우리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단계에까지 도달한 것일까? 중공이나 소련 지도자들은 서구식 민주주의가 조만간 멸망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우리 나라 안에도 비록 1주일 후는 아니라 할지라도 3년이나 4년 후 또는 10년 후에는 아마도 이러한 거대한 종말이 다가올지도 모른다고 떠드는 아는 체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볼 수 있다.
지금 문제가 된 것은 서구식 민주주서, 좀더 구체적으로는 우리 나라의 민주주의가 세계적으로 봉착하고 있는, 비단 경제적면 뿐만이 아닌, 위기를 극복할 능력을 가졌느냐하는 점이다.
즉 기계 문명의 무질서한 발전으로 야기된 혼돈을 극복하고 인구 과잉이나 초강대국들의 지배욕으로 인하여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침략의 물결을 이겨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졌느냐하는 문제일 것이다.
민주주의란 아무에게도 완전한 만족감을 준 일은 없었다. 심지어 민주주의 밑에서 권력을 행사한 사람들까지도 민주주의에 완전히 만족한 것은 아니었다.
오늘날 「유엔」 회원국 1백40 국가들 중 6분의 1 정도만이 진정한 민주주의 정부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란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 중 가장 훌륭한 것이지만, 너무 건방지고 깨지기 쉬운 것이며 언제나 인간의 자제력을 요구하고 미덕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강해지려면 민족주의와 결합되어야 한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다시 활력과 정열을 되찾아 지니고 있는 각종 규범을 현대화해 나가지 않는다면 더 이상 존속해 나가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바로 이와 같은 관점에서 「드골」은 퇴폐한 민주주의를 버리고 능률적인 민주주의를 지켜 나갈 수 있는 제도적 개혁을 단행하여 「프랑스」가 오늘날 세계 속에서 타국에 굴복하지 않고 떳떳이 살아 갈 수 있도록 유산을 남겨주었다.
우리는 지난날 고전적 민주주의를 좀먹던 병폐가 재발되는 현상을 목도하게 되는데 다름 아닌 민중 선동술이 바로 이것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여론이다.
여론 조사란 기왕에 일어났던 일이나 사태에 대한 반응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해야 하는 역할이란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예견하거나 다가올 불행을 미연에 방지하는 일이라고 하겠다.
위정자란 역사적 중요도를 식별하여 이를 국민 여론이 납득하도록 이해시켜야 하는 법이다.
국민 여론의 기복에 따라 우왕좌왕해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 따라서 국민 여론에 맞추어 정치한다함은 마치 스스로를 예인선에 매어둔 짐배처럼 만드는 것이다.
요즘 생긴 또 다른 민중 선동술은 연령에 대한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는 젊은 세대의 의욕을 부채질하여 이를 상품화하고 있다. 공산주의 세계는 젊은 세대의 불만을 자극하여 사상적 침투의 소지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인생의 다른 연령층을 모독하는 행위인 것이다.
다음은 원조라는 대중 선동 술책이다. 모든 직업, 모든 행동이 도움과 보조를 바라고 있다. 심지어 기존 질서에 도전하는 「데모」대들까지도 그들의 의사 표시의 자유가 「매스컴」의 동원이 불충분하여 피해를 받는다고 불평을 토로하고 있다.
사회에는 점점 더 많은 놀고먹으려는 부류들이 증가하고 관용은 남용의 씨를 낳고 있다. 멀지 않은 장래에 국민들 중 근면 생산하는 사람수가 점점 감소되어 국가가 부담해야될 점점 더 무거운 재정 부담을 급기야는 부담할 수 없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사람은 전적으로 남의 도움에 의존하면서 완전히 자유스럽기를 기대 할 수는 없는 법이다. 만일 모든 것을 국가에 의존하게 된다면 그 국가는 전제적이 되고 말 것이고 결국은 망하고 말 것이다. 세계는 위기에 처해 있다.
민주주의를 구축하고 있는 모든 위배 질서의 가치가 망각되고 부인되고 변질된다면, 그리고 기본적인 제도, 즉 사회 정의와 군대가 외부의 침략이나 내부로부터의 잠식으로 위협에 처하게 된다면, 모든 판사가 법을 적용하기 전에 이를 비판하고, 공공 단체의 파업이 다반사가 되고, 노동 조합이 국가 속에 또 하나의 국가를 구성하여 누가 누구를 통치하게 되는지 모르게 되고, 범죄 행위가 점점 더 포악해지고 숫자가 증가되어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범죄자보다는 피해자가 더 겁을 먹게 된다면, 또한 방종이 자유와 혼동되고, 애국주의는 외국에서만 존재하고 자국 내에서는 조소를 받거나 항의를 받기가 일쑤고, 국민들의 자각은 자기민족 고유의 것을 뭉치려는 노력보다 다른 나라의 것에 부합시키려는 경쟁적인 노력으로 분열되고, 끝으로 교회는 회의에 가득차게 되어 영적인 확신을 전파하기보다 정치적 행위에 참여하는데 더 치중하게 된다면, 우리들의 민주주의는 이런 나약한 사람들의 손에서 얼마나 더 존속될 것인가를 자문자답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다.
요는 우리가 현실적 또는 환상적으로 새로운 자유를 얻는 문제를 토론하자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이미 누리고 있는 자유를 여하히 뺏기지 않고 유지하는가 하는 것이며, 개인의 자유를 수호하는 제1의 조건이 되는 국가의 독립을 어떻게 유지하는가 하는 문제다.
세계는 전대미문의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우리는 무질서의 시대를 살고 있다. 금융·경제·사회적 무질서, 도시에로의 무질서한 인구 집중, 종교적 갈등, 사상·인종·종족간의 갈등이 낳은 무질서 등이다. 국제 연합은 무능한 광장으로 전락하였고 구주공동체도 그와 비슷한 첫발을 디딘 셈이다.
우리는 어떤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이 나약한 입장으로 미끄러지려는 우리의 몸가짐을 가누도록 해야하고, 국민들이 자기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능력을 상실하게 만드는 분열과 무정부 상태를 예방해야 할 줄 안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얼과 용기를 되찾아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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