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정재의 시시각각

국회에 이름값을 물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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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정재
논설위원
경제연구소 연구위원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虎死留皮 人死留名)’. 이름값 귀한 줄 알라는 옛말인데, 초등학교 졸업 학력이면 알아들어야 하는 국민 격언쯤 된 지 오래다. 어려서 귀에 새긴 가치와 철학은 세월 따라 잘 지워지지 않는 법인지, 나이 들어서도 “이름값 좀 하라” 소리엔 왠지 뒷목이 켕기곤 한다. 나만 그런 건 아닌 듯하다. 얼마 전 모친상을 당한 회사 옛 동료에게서 연락이 왔다.

 “화환 하나만 회사 이름으로 보내 줘.” 뜻밖이었다. 10여 년 전 퇴사 후엔 영 회사와 연락을 끊고 지냈던 사람이다. 인간사 줄 것도 받을 것도 없고, 허례도 허식도 싫다는 허무주의자였다. 넉넉한 형편도 아니지만 부의금도 안 받는다고 했다. “아들이 너무 이름값 못했다고 가시는 길 섭섭해하실까봐, 어머님 생각에….”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그답지 않게 첨언을 했다. 가슴이 짠했다.

 어디 제 이름 귀히 여기는 게 우리 같은 범속(凡俗)들뿐이랴. 300명, 수천만 민초들 중 고르고 고른 선량(選良)들이야 더하면 더할 것이다. 지난달 20일 청와대 규제개혁 ‘끝장 토론’을 보며 든 생각이다. 그날 끝장 토론의 끝장쯤엔 국회의 ‘입법 규제’가 도마에 올랐다. “의원 입법은 황사와 같은 존재” “감시하는 제도가 전혀 없다”는 불만이 잇따랐다. 답변에 나선 김광림 새누리당 의원은 “국회 입법 환경이 열악하니 야당 의원을 만나 설득해달라”며 남의 탓으로 비켜갔지만 그게 어디 그렇게 끝날 일인가.

 국회는 대한민국 규제의 산실이다. 규제의 주범으로 꼽히는 관료 세력은 저리가라다. 19대 국회는 이달 20일까지 9352건의 법안을 냈다. 그중 94.1%가 의원 입법이다. 의원 입법 10개 중 약 7개는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이었다. 정부 입법은 5.9%뿐이다. 말 그대로 의원들이 ‘황사처럼’ 마구잡이로 규제 법안을 내고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677건)·민주당 강창일 의원(687건)은 평균 하루 1건 이상 법안을 냈다. 규제·환경·비용 영향 고려는커녕 다 읽기나 했는지 의심스럽다.

의원 입법이 늘어나는 추세긴 하지만 18대 국회까진 그래도 정부 입법보다 세 배가량 많은 정도였다. 19대 들어 급증한 데는 관료들 책임도 크다. 이른바 의원들에게 부탁하는 ‘청부 입법’을 많이 한 결과다. 정부 입법이 의원 입법에 비해 비용·환경·규제 영향평가 등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 하니 이를 피하기 위해 꼼수를 부린 것이다. 세종시 관가에선 “청부 입법을 잘 하는 게 유능한 관료”란 얘기까지 나오는 판이다.

 순진한 생각이긴 하지만, 입법 규제를 막기 위해 이름값을 활용하면 어떨까. 의원 입법 실명제를 도입하는 거다. 주요 선진국들이 쓰고 있는 입법 실명제는 제법 역사와 전통이 있다. 시작은 로마에서다. 로마 법은 가문 이름을 법안에 붙여서 불렀다. 제안자의 책임을 밝히기 위해서다. 기원전 18년, 45세의 최고 권력자 아우구스투스가 원로원의 반대를 꺾고 밀어붙인 두 가지 법안은 지금도 역사에 남아 있다. ‘간통 및 혼외정사에 관한 율리우스 법’ ‘정식 혼인에 관한 율리우스 법’이다. 율리우스 법으로 되어 있는 것은 아우구스투스가 속한 가문이 율리우스 가문이었기 때문이다.(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이미 우리도 좋은 법엔 제안자 이름을 붙여 부른다. 공무원이 돈을 받기만 하면 무조건 처벌하자는 ‘김영란법’, 돈 안 쓰는 선거를 만드는 데 큰 몫을 한 2004년 ‘오세훈법’ 등이 그것이다. 물론 공식 법안명은 아니다. 여론이 그렇게 불러줄 뿐이다. 김영란법, 오세훈법은 그 자체로 본인들에게 명예다. 이름값도 어마어마할 것이다.

 실명제로 국회와 의원에게 ‘이름값 족쇄’를 채우면 황사처럼 쏟아지는 입법 규제는 제법 줄지 않을까. 물론 그래도 남는 걸림돌은 있다. ‘이름값이나 개값이나 마찬가지’라며 제 잇속 챙기는 법안을 마구잡이 밀어붙이는 분들. 그거야 어쩌랴. 싸구려에서 명품까지, 어차피 이름값이란 게 정찰제가 아니잖은가.

이정재 논설위원·경제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