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 위에 떨어진 파리는 어떻게 작품이 됐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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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7호 24면

작가들은 영감(靈感)을 갈구한다. 항상 촉을 곤두세운다. 그 촉에 뭔가 걸리는 순간, 그 뭔가는 작품이 된다. 스페인 작가 프란체스카 마티(Francesca Marti·사진)에게 그것은 날아다니는 파리였다.

프란체스카 마티 ‘제 3의 감각’전 3월 14일~4월 4일 서울 남산 표갤러리, 문의 02-543-7337

“1999년 쯤인가, 캔버스 위로 파리 한 마리가 떨어졌어요. 아직 마르지 않은 빨간 물감 위에서 이리저리 몸부림치며 만들어낸 흔적이 제겐 강렬한 매력이면서 동시에 엄청난 혐오감을 주었습니다.”

그 격렬한 몸부림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생명의 질긴 타래를 느낀 것일까. 그는 이후 죽은 파리의 몸에 원색의 물감을 칠하고 이를 사진으로 찍었다. 그리고 이를 확대해 갖가지 포즈를 취한 벌거벗은 모델들의 사진 위에 콜라주했다. 파리들이 편대 비행을 하는 듯한 형상의 설치물을 만들기도 했다. 이름하여 ‘Fly’ 시리즈다. 그는 “내 작품 속에서 파리는 더 이상 작은 미물이 아니다”며 “생명력의 원천을 선명한 원색의 칼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찢어진 캔버스 사이로 사진이 보이도록 한 ‘Tears’ 시리즈도 독특하다. 사진 속 누드 모델들의 눈빛은 강렬하다. 누군가 장막을 찢고 자신의 동굴을 침입한 것일까. 아니면 자신을 둘둘 감싼 장막을 스스로 찢어낸 것일까.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다. 다만 이제 세상 어느 누구와도 싸워 이겨내겠다는 의지만이 이글이글 불타오를 뿐이다. “요르단을 갔다가 어느 산 속에서 테트라라고 불리고 있는 동굴들을 보게 됐어요. 인간이 산을, 자연을 헤집고 나온 듯한 강렬한 에너지를 느꼈지요. 하나의 세계를 극복한다는 느낌을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마티의 작품을 큐레이팅하는 조나선 터너는 “생명체의 몸을 중심으로 풀어내는 그녀의 세계는 풍부한 감정을 담아내고 있기에 그만큼 광범위하고 무한적”이라고 말한다. 그런 경향이 잘 드러나는 작품 시리즈가 ‘Soul’이다. ‘파란 색 위의 흰색 그림자(White Shadow on Blue-2006)’는 움직이는 댄서들의 그림자 이미지를 그린 다음 캔버스 위에 윤곽선 위로 똑같은 표현의 몸 동작을 찍은 영상을 투사하는 작품이다. 회화와 사진, 영상과 퍼포먼스를 결합한 이 작품은 그림자가 가진 경직성을 뛰어넘어 생생한 입체감을 부여한다. 조너선은 이렇게 설명한다. “그녀는 시각의 전환과 추상적 움직임의 강력한 혼합으로 우리 눈을 속입니다. 사진에 그림을 그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 예술과의 결합을 통해 의외의 것을 추구하는 것이죠. 그것은 개념적으로 느껴지던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마티의 ‘Tears’ 시리즈는 2008년 유럽 몬티주 비엔날레에서 설치부문 어너러블 어워즈를 수상했고, ‘Soul’ 시리즈는 2007년 카이로 국제 비엔날레에서 스페인 국가관에 선보이며 1등상을 받았다. 그의 작품은 뉴욕현대미술관(MoMA) 등에서 소장하고 있다.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도 나가게 됐어요. 컴퓨터 앞에서 어디로든 이동 가능한 현대인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어요. 떠도는 유목민으로서의 감정을 새롭게 풀어내기 위해 고민 중입니다.”

‘제 3의 감각(The Third Sense)’이라는 제목의 이번 전시는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마티의 전시다. ‘Tears’와 ‘Soul’ 이외에도 ‘Dreamers’ ‘Scream’ ‘Nomad’ 등 다양한 시리즈를 볼 수 있다. 회화, 사진, 조각, 비디오 설치, 그리고 퍼포먼스 등 2000년부터 2014년까지의 작업 중 45점이다. 미국의 대중가수 레이 스콧(Ray Scott)에 초점을 맞춘 사진시리즈, 호주의 올림픽 금메달 다이빙 선수인 매튜 미챔(Matthew Mitcham)의 공중 덤블링 모습이 묘사된 목탄 드로잉 신작도 가져왔다. 전시는 주한스페인대사관·주한호주대사관 등이 후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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