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처럼 한결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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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내게 늘 한결같은 당신에게.

 2002년 월드컵과 함께 대한민국이 온통 붉은 물결로 물들던 그해. 우린 힘찬 함성과 열정만큼이나 뜨거운 사랑을 시작했지. 어느새 강산도 한 번 변하고 벌써 12 년이라는 시간이 우리를 지나갔네. 그때 우린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그저 서로만 바라보고 서로에게만 충실하며 사랑을 했었지. 가냘프고 풋풋했던 사진 속 당신은 이제 동그란 배가 적당히 나온 아저씨로, 나는 허리둘레가 굵어진 아줌마로 변했네.

 1년여 연애 기간과 신혼 때만 해도 우리는 항상 같이 꽃을 보고, 바다 백사장을 거닐며, 단풍과 눈을 밟으며 남 못지 않은 사랑을 쌓았지. 그러나 맞벌이인 우리는 세월이 갈수록 이 같은 일상을 추억으로만 간직한 채 바쁜 남편과 아내로만 살았던 것 같아.

 당신은 하늘을 평생 짊어져야 했던 아틀라스(그리스신화 속의 신)처럼 처자식이라는 무거운 짐을 어깨 위에 올리고 있고, 나는 일과 육아·살림이라는 숙제를 푸느라 ‘함께라는 단어를 잊고 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자연히 서로의 얼굴을 봐 줄 시간은 줄어들고, 가끔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 부부싸움으로 이어지기까지 했던 것 같아.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주워담지 못할 말들을 내뱉으며 생채기를 내기도 했고. 그렇지 여보.

하지만 우리는 ‘함께’라는 단어를 줄곧 가슴에 간직해 온 것 같아. ‘우리는 함께’라는 믿음이 어렵고 힘들 때마다 ‘조금씩 이해하고, 배려하고, 양보하며 서로가 좋아하는 말을 찾아서 하자’는 약속을 지키며 살아온 토양이 됐던 것 같아.

최근 결혼 11주년 기념일을 맞아 강원도 여행을 다녀온 최영자·남경원씨 부부와 자녀들.

당신이 얼마 전 결혼 11주년 기념일(3월 9일)을 앞두고 내게 “요즘 같은 이런 행복이 계속되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순간 깜짝 놀랐다. 이제껏 그런 표현을 한 번도 하지 않던 당신의 그 말은 나에게 감동, 그 자체였어. 비록 세월이 흘러 풋풋했던 젊은 시절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삼남매라는 보물을 우리가 만들었으니 결혼 생활도 성공한 거야. 그렇지 여보.

 당신을 우리 집에 처음 데려간 날 엄마는 “생각했던 사윗감은 아니다”며 탐탁지 않게 여겼어. 그런데 결혼 이후 엄마는 한결같이 주변 사람들에게 “우리 남 서방 같은 사위 없다”며 자랑하고 나에게도 “너도 알토란 같은 신랑 잘 만나서 이만큼 사는 거야”라고 말씀하셔. 얘기 들을 때마다 내 어깨가 하늘까지 올라간 것 같은 기분인 거 알아.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나와 아이들을 생각하는 당신의 마음은 늘 한결같았어. 그런 당신에게 웬 불만이 그리 많았던지. 미안해 여보.

 이달 초 결혼 11주년 기념으로 간 강원도 여행에서 당신의 뒷모습을 사진으로 담는데 심장이 뜨끈해지더라. 나와 아이들은 물론 당신 엄마, 그리고 장인·장모 등 양가 가족을 챙기고 보살펴야 하는 무거운 짐을 어깨에 올려놓고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 당신이 너무 대견하고 고마워서 말이야.

 여보. “사랑으로 살래. 의리로 살래”라는 영화 대사처럼 가끔 고민을 하지만 사랑이든 의리든 지킬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 서로 가정에 충실하며 의리와 함께 더 깊은 사랑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

 언젠가 아이들이 다 자라면 둘이 손 잡고 바닷가에 다시 가는 그런 봄날 꼭 만들자. 그때까지 우리 더 사랑하고 보듬으며 건강하게 살아갑시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 같은 사람은 정말로 이 세상에 없습니다.

영원한 당신의 아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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