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계에 새로운 동향|삼국·고려 시대 연구 「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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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우리 나라 국사학계는 올 가을 들어 삼국 (고구려·백제·신라) 시대와 고려시대에 관한 연구 논문들을 집중적으로 발표해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9월말부터 열리기 시작한 역사관계 학술 회의와 학회지들이 이 시기를 다룬 논문만 해도 무려 21편에 달할 정도. 지난 9월27일 역사 학회 월례 발표회에서 허흥식씨 (국사·서울대 대학원)가 『고려 국자 감시를 통한 신분 유동』을 발표한 이래 『역사 학보』 67집 (9월30일간)에 2편, 『진단학보』 40호 (10월7일간)에 3편 등이 발표됐다. 국사학계는 아니지만 동양사학회가 l1월 중순 공개 강좌를 통해 한·중 관계사 중 삼국과 고려에 관련되는 교섭 논문 4편을 발표할 예정으로 있어 이 시기의 연구는 「붐」을 이룬 느낌이다.
한편 대학 주최로 열린 학술 회의에서는 지난 11일 단국대 동양학 연구소 (소장 이희승) 가 주최한 동양학 학술 회의에서 『고려기-중세 문화의 특성』에 관한 논문이 6편이나 발표됐다. 15, 16일 이틀간 충남 공주 사대에서 열리고 있는 백제 문화 「심포지엄」에서도 『백제 문화 연구의 성과와 방향』에 대해 4편의 논문이 발표 돼 진지한 토론을 벌이고 있다.
이제까지 국사학계는 근세사 연구가 주류를 이루어 왔었다.
따라서 삼국이나 고려에 관한 논문은 기껏해야 1년에 3, 4편에 불과했다.
국사학자 이광린 교수는 이같이 중·고대사 연구열이 높아진 원인을 3가지로 분석하고 있다.
첫째 해방 후 교육받은 세대들이 논문 발표 등 학술 활동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특히 이들은 해방 후 소수의 국사학자들이 세워 놓았던 고대사의 가설에 대해 회의를 하고 새로운 학설을 발표해 이 같은 경향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로 지적되는 것은 삼국과 고려 시대 연구의 현실적 필요다.
많은 학자들이 문헌적인 자료가 풍부한 여말선초 이후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온 것이 현재까지의 실정. 그러나 삼국과 고려에 대한 사실들의 정립 없이는 이조의 연구 역시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최근 많은 학자들이 깨달은 것이다.
세번째 원인은 동서양사를 비롯한 연접 학문의 발전.
국내나 외국에서 이용되는 고고학·인류학·사회학 등의 이론과 방법은 필연적으로 국사학에도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30년전만 하더라도 국사학계는 소박하게 문헌학적인 방법만이 사실 취급의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문헌이 못 미치는 부문에 대해 고고학적인 발굴과 사회·인류학적인 조사로 보완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입장에서 볼 때 이전의 학문은 많은 헛점이 발견되고 이에 대한 보완과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국사학계 원로 이병도 박사도 신진학자들의 이러한 경향을 환영하고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존의 학설에 대한 비판에는 그것을 대치할 새롭고도 알찬 내용이 있어야된다고 말했다. 만약 그런 내용이 없이 비판만 한다면 자조에 빠지고 학문 자체가 공허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도록 당부했다.
다음은 최근 발표된 논문 중 이런 면에서 주목을 끄는 필자와 제목들.
▲이기문 (국어학·서울대) 고려시대의 국어의 특징 ▲정영호 (미술사·단국대) 고려 석탑의 양식상의 특성 ▲이휘구 (중문학·단국대) 12, 13세기 고려의 승당시풍 ▲김정배 (한국사·고려대) 백제 건국의 제 문제 ▲이기백 (한국사·서강대) 신라 초기 불교와 귀족 세력 ▲이기동 (한국사·국민대) 신라 중고 시대 혈족 집단의 특질에 관한 제 문제 ▲홍승기(한국사·전남대) 고려시대의 공장 ▲허흥식 (한국사·서울대) 고려시대 왕사·국사 제도와 그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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