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삶과 믿음

아담의 후예인 죄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세상에서 웬만해선 좋은 소리를 듣기 어려운 곳 세 군데가 있다.

첫째는 병원이다. 건강검진을 받은 사람치고 어느 누구도 “당신은 완벽한 건강을 소유했소”라는 말을 들었다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 늘 어디가 안 좋다느니, 뭘 조심해야 된다느니, 뭘 먹지 말라느니, 이런 말을 듣는다. 그렇기 때문에 병원은 늘 부담스러운 곳이다. 아마 그게 의사들의 업무일 것이다. 그래야 병원이 존재하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사람의 병을 찾아서 고치는 곳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학원이다. 자식을 데리고 학원을 찾아가는 학부모에게 “당신의 아이는 우수합니다”라고 말했다는 선생을 들어본 적이 없다. 우리 아이에게만 그렇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뭐가 부족하다느니, 뭐가 뒤진다는 이야기만 한다. 그렇게 해야 비싼 돈을 들여서 공부를 시키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는 모양이다.

셋째는 교회다. 교회도 성도들에게 칭찬하는 말을 잘 해주지 않는다. 늘 꾸짖는 말을 한다. “당신은 죄인입니다”라고 말하기 좋아한다. 뭘 해야 된다는 말, 왜 안 하느냐는 말, 뭐가 부족하다는 말만 한다. 교회가 누구를 칭찬했다는 말은 듣기 힘들다. 누가 큰 액수의 헌금을 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교인들도 그런 분위기를 기대하고, 또 당연히 여긴다. 그런데도 자기 발로 교회를 다니고 헌금까지 내는 것을 보면 참으로 신기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이 같은 현상은 앞으로도 쉽사리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아담과 하와가 금단의 열매를 따먹고 난 뒤 하나님의 존재를 두려워하고 나무 뒤에 숨었다고 했다. 인류는 아담의 후예이기 때문에 지금도 하나님 앞에서는 늘 긴장하고 두려워한다. 나무 뒤에 숨지는 않더라도 뭔가 자신을 숨겨줄 만한 것을 찾는다. 하나님이 입을 여는 이유는 꾸짖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심리적 상태 때문에 그런 것이지, 하나님이 일부러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일부러 겁을 주지 않았다. 아담 스스로가 겁을 먹고 숨은 것뿐이다. 원래 하나님의 의도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진정한 의도는 인간과 인격적으로 교류하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었다. 그 목적으로 인간을 만드셨다. 하지만 그 목적은 무산됐고 그 여파는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신약성경은 인간이 하나님께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제시했다. 바로 믿음을 통해서다. 예수님이 유일하게 누구를 칭찬했을 때는 그들의 믿음을 보았을 경우였다. “네 믿음이 크도다”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했다” “네 믿음대로 되리라” 등과 같은 칭찬을 하셨다. 흥미로운 사실은 사람의 도덕적 우월성 때문에 칭찬한 경우는 없지만 믿음 때문에 칭찬한 경우는 많다는 것이다. 히브리서 저자도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할 수 없다”라고 썼다.

현실적으로 사람이 하나님을 친구처럼 서슴없이 대하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존재는 너무 높고 멀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서워하고 멀리할 수밖에 없는 것도 아니다. 믿음이 불가능하게 보였던 길을 트고 문을 연다. 인간은 두려워하는 대신 믿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의외로 신앙의 길이 어렵지 않고 괴롭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김영준 예일대 철학과와 컬럼비아대 로스쿨, 훌러신학교를 졸업했다. 소망교회 부목사를 지낸 뒤 2000년부터 기쁜소식교회 담임목사를 맡고 있다.

김영준 목사 pastortedkim@gmail.com

오피니언리더의 일요신문 중앙SUNDAY중앙Sunday Digital Edition 아이폰 바로가기중앙Sunday Digital Edition 아이패드 바로가기중앙Sunday Digital Edition 구글 폰 바로가기중앙Sunday Digital Edition 구글 탭 바로가기중앙Sunday Digital Edition 앱스토어 바로가기중앙Sunday Digital Edition 구글마켓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