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1초가 급한데 … 119 위치추적 '서울서 김 서방 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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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떠난다. 잘 있어라.” 지난 2월 7일 A씨(38)는 친구들에게 자살을 암시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자신이 구입한 밧줄 사진을 찍어 작별 인사와 함께 전송했다. 심상치 않다고 느낀 친구들과 A씨의 가족들은 곧바로 소방서에 위치추적 요청을 했다. 경찰과 소방인력 30여 명이 동원돼 위치추적 결과를 토대로 A씨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A씨는 수색 3시간 만에 등산객의 신고로 산 속에서 발견됐다. A씨는 문자에 나온 사진 속 그 밧줄로 목을 맨 채 숨져 있었다. 그가 발견된 곳은 서울 광진구 아차산 초입으로 경찰과 소방관들이 A씨를 찾아 헤매던 곳에서 600m가량 떨어져 있었다.

 A씨 사고가 일어나기 3주 전인 1월 21일에도 비슷한 사고가 있었다. 평소 심장질환이 있던 김모(55·여)씨가 밤늦게까지 귀가하지 않자 걱정된 가족들이 소방서에 위치추적 요청을 했다. 경찰과 소방대원이 수색에 나섰지만 결국 김씨를 발견하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김씨는 자신이 근무하던 광진구 한 백화점 지하 창고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김씨가 발견된 곳도 수색지점에서 700m 떨어져 있었다. 위치추적시스템에 ‘구멍’이 있는 셈이다.

 위치추적 이용은 2010년 6만5300건에서 2012년 14만6500건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하지만 추적에 성공해 인명구조로 연결된 경우는 매년 2% 안팎에 그치고 있다. 위치추적이 정확한 지점을 잡아내지 못하는 건 대부분 통신사 기지국에만 의존하기 때문이다. 기지국 방식 위치추적은 휴대전화가 최종적으로 연결됐던 기지국 위치를 알려준다. 따라서 정확성이 떨어진다.

 대안으로 나온 게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방식이다. GPS 방식은 오차범위를 20m까지 줄일 수 있다. 대신 구조 대상이 휴대전화의 GPS 기능을 켜놔야 위치를 파악할 수 있고 실내 추적이 어렵다. 그나마 1월부터 경찰은 GPS 기능을 강제로 켜지게 하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위치추적 대상 휴대전화의 GPS가 꺼져 있더라도 원격조정으로 기능을 활성화해 위치를 찾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를 이용하려면 제한이 많다. 실종·납치 등 범죄에 노출됐다는 명확한 증거 없이는 위치추적이 쉽지 않다.

 소방서의 경우 위치추적 요청이 경찰에 비해 쉽지만 대부분 기지국 방식이다. 소방관들에게 위치추적 수색은 가장 힘든 업무 중 하나다. 서울의 한 소방서에서 근무하는 이모(34) 소방교는 “소방서 위치추적은 대부분 기지국 방식이라 수색 반경이 거의 500m 이상”이라며 “힘은 힘대로 빠지고 욕은 욕대로 먹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최모(29) 소방위는 “기지국 추적을 토대로 수색에 나가는 건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나 다름없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긴급구조 위치추적 시스템이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KAIST 한동수(전산학) 교수는 “GPS와 와이파이, 블루투스 방식 등 다양한 기술이 이미 상용화 단계에 있기 때문에 여러 기술을 복합적으로 적용하면 보다 정확한 추적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경찰과 소방의 신고 시스템을 통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서울시립대 제진주(소방방재학) 겸임교수는 “미국이나 유럽연합(EU)처럼 구조 신고 번호를 하나로 합쳐 위치추적 시스템을 좀 더 효율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석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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