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철학자 새 경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근래 미국 철학계는 전통적인 철학 연구방법을 완전히 탈피, 소위 「현미경적 철학이라는 분석철학이 학계를 휩쓸고 있으며 그 영향은 「유럽」학계에도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다. 미 대학에서 강의 중 귀국한 박이문 교수와 작년 10월 구미를 돌아본 김려수 교수는 최근의 새 경향을 다음과 같이 전해주고 있다.
미국 철학이라면 50년대 실용주의적 방법론이나 60년대 월남전의 와중에서 나타난 「마르쿠제」의 이론이 전부인 것으로 여기는 것이 상례.
그러나 미「시몬즈」대학(「보스턴」소재) 철학과에서 논리학과 분석철학을 강의하다 최근 일시 귀국한 박이문(43)박사는 미국 철학계의 특징을 전문화·형식화·계량화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경향은 전 미국대학의 일대 유행으로 「하버드」대의 「콰인」·「파트남」·「폴·굿맨」교수, 「프린스턴」대의 「토머스·쿤」, 「버클리」대의 「화이어·아벤트」, 「피츠버그」대의 「셀러스」교수 등 수 많은 학자들이 동참하고 있다는 것이다.
분석철학(혹은 계량철학)이라는 말이 쓰이게 된 것은 1930년대로서 「비트켄슈타인」이 철학의 과학화 가능성을 비친 이래 「버트런드·러셀」과 「무어」등을 거치면서 더욱 세련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분석」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듯이 분석철학은 전통적인 철학의 조류에 새로운 대상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방법으로 과거의 철학이 대상으로 했던 주제를 다시 음미,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경향이다.
따라서 분석 철학자들은 명제가 주어지면 그 명제의 결론이 도달할 때까지 수없이 「왜」라는 질문을 반복하여 문제의 근원을 파헤친다.
이러한 과학적 입장 때문에 그들은 기존 철학사나 철학을 「철학의 스토리」에 불과하다고 규정한다.
한편 이러한 미국식의 방법론은 전통적인 「유럽」철학계에도 소개되어 독일이나 「프랑스」에서도 조심스럽게 분석철학의 방법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김려수 교수(성균관대)는 말한다.
현재 독일 철학계는 「비판적 합리론」과 신「마르크스」주의의 2대 학파가 대립 중에 있는데 양자의 신진 학자들이 분석철학의 방법을 많이 채택하고 있다는 것.
비판적 합리적의 기수인 「칼·포퍼」는 「과학적 발견의 논리』라는 그의 최근 저서에서 자연과학의 이름을 도입, 종래 이론만을 추종했던 철학에서 벗어나 사회현상을 다루고 있다.
이러한 사정은 신「마르크스」주의에서도 마찬가지. 이의 대표적 사상가인 「하버·마스」(독 「막스·프랑켄슈타인」연구소장)는 「마르크스」주의와 「헤겔」의 변증법에 방법론으로서 「언어 분석」의 방법을 채택, 그의 이론을 체계화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의 경우 철학의 대상에 구애됨이 없이 그 대상을 연구하는 방법으로 전문화·형식화·계량화하는 철저한 과학성의 추구가 특색. 이에 비해 전통적인 철학의 대상을 추구하는 독·불 철학계는 미국의 방법론을 도입해 기존 철학에 대해 새로운 이해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임연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