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위 싹쓸이 뒷심, 美그린 '한국여인 천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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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번홀 그린. 홀까지는 약 12m에 이르는 먼 거리. 게다가 내리막 경사. 투 퍼트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퍼터를 떠난 공이 적당한 스피드로 구르면서 홀컵 쪽으로 방향을 잡자 박세리는 마치 리모컨으로 조종이라도 하듯 퍼터를 들어올리며 한걸음씩 뒷걸음질쳤다. 공은 요격 미사일처럼 정확히 목표물을 찾아 들어갔다.

기적과도 같은 파 세이브. 박세리는 두팔을 번쩍 들어올리며 환호했다. 그리고는 자신감이 충천했다. 사실 이런 퍼트가 들어갈 정도라면 승리의 여신은 자기 편이라고 확신해도 좋았다.

3라운드까지 선두 소렌스탐에 3타 뒤졌던 박세리는 최종 4라운드에 들어가자 초반부터 신들린 듯한 플레이를 펼쳐 순식간에 선두로 치고 나왔다. 1번홀(파4)과 2번홀(파3)에서 연속 3m 남짓한 버디퍼트를 넣어 소렌스탐에 1타차로 따라붙은 뒤 4번홀(파5.4백65m)에서는 세컨드샷이 홀에 들어갈 듯 핀 가까이 붙는 알바트로스성 이글로 단숨에 역전에 성공했다.

박세리는 전반 9홀에서만 6언더파를 추가하는 기염을 토했다.

전반 9홀을 파플레이로 끝낸 소렌스탐은 이미 박세리에게 3타를 뒤져 더 이상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소렌스탐의 컴퓨터처럼 정확하던 웨지샷은 흔들렸고, 전날까지 그렇게 잘하던 퍼트도 고장이 난 듯 홀 언저리를 핥고 나오는가 하면 문턱에서 멈추기 일쑤였다.

박세리의 경쟁 상대는 오히려 박지은이었다. 전반 9홀에서 2개의 버디를 뽑아낸 박지은은 후반으로 접어들며 15번홀까지 4개의 버디를 더해 박세리를 매섭게 압박했다.

박지은이 1타 차이로 맹렬히 추격해오던 17번홀(파4)에서 박세리는 위기를 맞았다.

3번우드로 친 티샷이 빗맞아 공이 페어웨이 왼쪽 연못에 빠진 것이다. 1벌타를 받은 박세리는 동타, 어쩌면 역전까지 허용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세번째 샷을 8번 아이언으로 그린 오른쪽에 올려놓은 뒤 기적적인 내리막 12m 파퍼트를 성공시켜 계속 리드를 지켰다.

성백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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