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모면의 서정쇄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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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안보태세의 확립과 경제불황의 극복, 그리고 공무원사회의 부조리 추방―. 이 세 가지는 올 들어 정부가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시책들이다.
안보문제는 인지사태 이후 더욱 고조되고는 있으나 어떤 의미에선 남북분단이래 짊어져 온 항재적인 과업이라 할 수 있다. 경제시책 또한 그렇다. 그렇다면 금년 시정의 평가는 공무원사회의 부정·부조리를 과연 추방할 수 있느냐의 여부에 달렸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사회의 고질적 풍토가 되다시피 한 부패의 일소는 그것만으로도 지금 강조되고 있는 국민총화와 나아가 안보태세 확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란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지난달 초 박 대통령이 공무원사회의 부조리, 특히 민원창구의 급행료 일소를 강력히 지시한 이래 급행료 수수와 같은 부조리 현상은 현저히 줄어든 게 사실이다.
그러나 공무원사회의 일각에서는 아직도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지금 같은 강력한 통제가 오래는 지속되지 않을 터이니 그동안만 넘기고 보자는 안이한 생각에 젖어있는 모습이 없지 않은 듯 하다.
평소 대민 업무가 많은 공무원들이 관내출장을 핑계로 자리를 비우고 있는가 하면, 문제가 될듯하면 사표를 낸 뒤 행방을 감추거나 관청 자체에서 미리 직위해제 등으로 일시적인 탈출구를 마련 해주는 등 사례가 빈번하다는 보도는 전기한바와 같은 안이한 생각을 반증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뿐만 아니라 표면상 급행료를 주고받는 행위가 현저히 줄었다고 하지만 국민들의 불편이 이에 비례해서 줄지는 않았다는 불평이 자주 들리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할 일이다.
담당 공무원이 숫제 자리를 비워버리거나, 아니면 자리에 있어도 만나기를 꺼려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일 처리가 오히려 늦어지는 경우가 많아 시민은 더 골탕을 먹기 마련이다.
공무원들의 이러한 일시 모면 심리는 주로 부패추방 노력이 오래 계속되지 않으리란 판단에 기인한다고 보아 틀림없다.
그러므로 이 같은 타성을 없애고 부정부패를 발본색원하려면 부패추방 노력이 과거와 같이 간헐적이 아니라 뿌리가 뽑힐 때까지 꾸준히 지속돼야할 필요성이 있다.
그렇지 못할 때 서정쇄신 작업은 관청가에 불안한 바람만 일으킬 뿐 소기의 성과를 기대하긴 힘들 것이다.
공무원사회의 부조리추방의 요체는 물론 국민전반의 의식구조와 정신적 풍토가 바뀌어져야 하며, 보다 근원적으로는 지도층의 도덕성확립이 전제가 되어야 함을 본 난은 누차 강조한바있다.
그리고 제도확립 문제에 대한 논의 또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부정부패 감시기구의 지속적 활동을 포함한 제도적 장치는 사회적으로 부패추방 의욕이 있을 경우 이를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필수적인 방법이 아닐 수 없다.
「싱가포르」·인도·자유중국·「필리핀」 등 동남아 각 국의 법 제도를 살펴보면 우리에게도 몇 가지 참고 될만한 점이 있다.
효율적인 부패감시기구와 정상수입에 어울리지 않는 부를 부패행위의 근거로 간주할 수 있게 하는 법령체제 그리고 공무원 재산등록제 등이 바로 그것이다.
「싱가포르」의 부패추방은 효율적이고 강력한 부패행위 수사국의 활동에 크게 힘입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꼭 새 기구를 만들 필요는 없겠지만 현재 종횡으로 흩어져 있는 사정기구의 재조정을 한번 생각해 봄직하다.
그리고 정상수입에 비해 현저히 사치스런 생활을 하는 공무원을 부정 부패자로 간주하여 공직에서 추방하고 그 부분의 재산을 국고에 환수하는 제도도 검토해 볼만하다.
그 기초로 공무원의 재산등록제가 병행 시행될 때 효과는 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부패추방운동에서야말로 지속성이 없는 한 서정쇄신→행정 지체→부조리 재 만연의 악순환을 단절하긴 어렵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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