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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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낙관과 비관의 차이를 술병에 비유하는 사람이 있었다. 술이 절반쯤 들어 있는 병을 보며 낙 천자는『아직 반병이나 남았구나』하고 즐거워한다. 그러나 똑같은 병을 바라보며『이젠 반병밖에 남지 않았구나』하고 비관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 나라의 실업 율이 6·2%라는 당국의 공인집계를 보며 문득 그 낙관과 비관의 예 화가 생각난다. 최근 미국의 경우 실업 율은 8%를 넘어 9%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 나라의 통념으로는 실업 율이 6%만 넘어도 세상이 술렁거린다고 한다. 9%에 가까워지고 보면「포드」대통령이 부업과 불황을 미국의「공적 제1호」로 꼽을 만도 하다.
우리 나라의 낙관론자들은 바로 미국의 경우를 지적할지도 모르겠다.『선진공업국도 그렇거늘, 우리의 6· 2% 쯤 이야…』하고-.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아무래도 비관론 쪽인 것 같다. 지난 74년 12월 말 현재 휴·폐업에 들어간 공장은 무려 2천7개소에 이르며 이에 따른 실업자는 8만 명에 가깝다. 여기에 기존실업자 40여만 명, 올해 새로 노동시장에 쏟아져 나온 신 참자들을 포함시키면 그 숫자는 어마어마할 것 같다.
당국의 공식집계를 보면 실업자수는 75만여 명이다. 그러나 취업자 가운데 주 36시간 미만의 근무 자로서 추가취업을 희망하는 인구와 완전 실업자수를 합치면 그 수는 2백5만5천여 명에 달한다. 경제활동 인구의 17%이다.
이와 같은 현상을 경제용어로 설명하면 노동능력과 의욕이 있는 사람 5명 가운데 한 명 꼴은 마땅한 직업이 없는 셈이다.
그러나「불완전취업」의 경우 그 현실은 더욱 어둡다. 취업의 안정·불안정과 소득의 고·저로 보면 취업의 상태를 달리 해석할 수도 있다. 생계에 위협을 받는 소득 자를 통계상으로는 취업자로 간주할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 그의 취업은 별 의미가 없다.
여기에 인플레이션까지 겹쳐 있다. 도매물가가 44.6%나 오른 상황에서 모든 취업자는 일률적으로 상당한 소득이 줄어들고 있는 셈이다. 직업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 못지 않게 『얼마를 받느냐』도 심각한 문제로「클로즈업」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실업문제는 장기화·만성화·대중화되고 있는 느낌이다. 더구나 자기의 저축이 없고, 사회적인 생활 보장 책이 이루어지지 못한 사회에선 실업은 절박한 사회문제이며 불행한 사태이기도 하다.
이런 사회적인 불행은 그나마 모든 취업자의 기여도향상과 체계 있는 경제정책 등으로 극복되어야 할 것이다. 그럴수록 사회의 도덕적 기풍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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