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 탄 것처럼 100년 전 농촌 풍경 속으로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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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솔(오른쪽)·김원정 학생이 100년 전 장터의 모습을 재현한 모형을 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추웠던 겨울이 끝나갑니다. 입춘이 지나고 봄이 다가오며 겨우내 얼었던 땅에도 푸른 싹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는 시기죠. ‘입춘에 보리 뿌리가 셋만 되면 풍년 든다’는 말도 이맘때 만들어진 우리 조상들의 전통이에요. 보리 뿌리를 캐냈을 때 뿌리가 세 가닥이면 풍년이 들고, 두 가닥이면 흉년이 든다고 믿었던 것이죠. 우리의 역사는 농업의 역사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농사와 연관이 있습니다. 의식·행동·풍습 곳곳에 농사가 관련돼 있죠. 김민솔(인천 신대초 3)·김원정(인천 청일초 3) 학생이 소중 체험평가단으로 선발돼 우리나라 농업의 역사와 전통농가의 삶을 엿보러 ‘농업박물관’을 찾았습니다.

글=김록환 기자 , 사진=우상조 인턴기자

1. 모내기를 하는 조선 시대 농촌의 풍경.
2. 평가단이 소를 이용한 농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3. 곡식의 씨앗을 살펴보는 평가단의 모습.
4. 모내기를 마친 논을 그대로 재현한 전시시설.

서울 중구에 있는 농업박물관은 다양한 농기구 유물을 통해 농업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농경이 시작된 신석기시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농업 현장의 모습은 미니어처(실물과 같은 모양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작은 모형)로 만들어져 있다. 우리 조상들이 농사를 지을 때 사용했던 농기구는 실물 크기로 박물관 곳곳에 놓여 있다.

체험평가단이 먼저 찾은 곳은 박물관 1층에 있는 ‘농업역사관’이다.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의 농업 발달사를 시대순으로 전시하고 있는 공간이다. 역사관 입구에 들어서자 동물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은 원시인의 미니어처 모형이 평가단을 반긴다.

“약 1만 년 전 신석기 시대의 사람들은 가축을 키우고 농사를 지으며 식량을 생산했어요. 물과 먹을 것이 풍부한 강가나 바닷가에 움집을 짓고 공동체 생활을 했죠.” 농업박물관 노대관 과장이 실제와 동일한 크기로 제작된 움집을 가리키며 말했다. 일정한 주거지 없이 사냥과 채집으로 먹고 살았던 구석기 시대와는 달리, 신석기에는 농사 때문에 한 곳에 정착할 필요가 있어서 움집이 탄생한 것이다. 1m 깊이로 땅을 판 후 풀·짚단으로 지붕을 만든 간단한 형태의 집이다. 출입구 가까이에는 농기구가, 안쪽에는 흙으로 만든 토기를 놓는 곳이 마련돼 있었다.

“농사를 지을 때 쓰는 낫이나 호미가 이 때부터 있었나요?” 평가단이 움집 앞에 놓인 농기구를 신기한 듯 바라보며 말했다. “당시의 농기구는 모두 돌로 만들어졌어요. 철을 만드는 기술이 없었기 때문인데, 기구의 모양이나 쓰임새는 지금과 크게 차이가 없답니다.”

이 때는 농업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넓은 땅에 농사를 짓는 것이 불가능했다. 사람이 누울 정도 크기의 조그만 땅에 조·기장·보리를 재배하는 정도였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땅에 불을 질러 잡초를 제거해야만 했는데, 나무와 풀이 타고 남은 재는 자연적인 거름이 돼 땅을 기름지게 만들어 줬다. 지식이 부족했던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한 번 농사를 지은 땅을 버려야만 했다. 노 과장은 “불을 지르고 곡식들이 자라면서 양분을 뽑아먹은 땅이 예전의 지력(농작물을 길러 낼 수 있는 땅의 힘)을 회복하려면 2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역사관 안쪽으로 들어간 평가단은 손바닥 크기만한 조각을 볼록렌즈로 관찰할 수 있게 만들어진 시설을 발견했다. 렌즈를 들여다보자 두 명의 사람이 농기구를 사용해 땅을 일구는 모습이 조각에 새겨져 있었다. “지금의 대전시 근처에서 발견된 ‘농경문 청동기’라는 조각이에요. 약 2300년 전 만들어진 것으로 당시 사람들이 농사를 짓던 모습이 새겨져 있죠.” 제대로 된 문자가 없었던 옛날에는 생활 모습을 조각으로 새겨놓는 풍습이 있었다. 여기에는 밭을 가는 모습, 수확한 곡물을 토기에 보관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본격적으로 농업이 발달한 것은 삼국시대부터다. 철로 농기구를 만들어 사용하면서부터 한 번에 많은 양의 수확을 거둘 수 있게 된 것이다. 역사관 안에 있는 삼국시대 전시관에서는 삼국사기와 신라 촌락문서의 기록, 고구려 고분벽화 속 그림을 통해 삼국의 농경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농사를 짓는 땅의 규모가 신석기 시대보다 훨씬 넓어졌죠? 4세기 이후 소갈이(소로 밭을 가는 방법)가 알려지며 농업생산력이 늘어났기 때문이랍니다.” 사람이 아닌 소의 힘을 이용하며 땅을 보다 깊이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철제 농기구와 소갈이의 도입은 농사의 발전을 불러왔다. 작은 땅에서만 벼농사를 짓던 과거와 달리 백제의 벽골제, 신라의 시제와 같은 국가 중심의 대규모 수리시설(물을 이용하는 시설)이 적극 도입됐다. 여기서는 논 유적과 벽골제 모형, 농경 도구 전시와 함께 당시의 농경 현장을 미니어처로 구경할 수 있다.

1층의 가장 안쪽에는 고려와 조선 시대의 농경 생활상이 그림으로 전시돼 있었다. “산을 깎아 계단처럼 논밭이 펼쳐져 있네요.” 평가단이 본 것은 ‘계단식 논밭’이다. 당시 고려에서는 백성들이 땅을 농지로 일궈내면 세금을 줄여주는 등의 혜택을 부여했다. 송나라의 사신 서긍은 고려를 방문해 계단식 논밭을 보고 신기해했다. 그가 쓴 『고려도경』에는 “멀리서 보기에 마치 사다리 같은 논밭”이라고 표현돼 있다.

조선도 고려와 마찬가지로 농업을 중시했다. 조선시대에는 농사짓기에 중요한 물을 잘 관리하기 위해 제언·천방이라는 수리시설을 만들었다. 맞두레·용두레·무자위라 불리는 수리도구들도 한 쪽 벽면에 전시돼 있었다.

“주로 작은 개울이나 물웅덩이에 있는 물을 퍼서 논밭에 넣어주는 데 사용된 도구입니다. 못자리에서 기른 모(옮겨 심기 위해 기른 벼의 싹)를 논에 옮겨 심는 방식인 모내기도 조선시대 시작됐죠.”

수많은 사람들이 모내기를 하는 미니어처를 보며 평가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2층으로 올라간 평가단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농가주택, 전통장터의 모습이 실제 크기로 전시된 ‘농업생활관’에 온 것이다. 20~30개의 사람 모형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다양한 동작을 취하고 있었다. 약 100년 전 우리나라의 농가 풍경을 그대로 담아냈기 때문에 화장실, 안방, 마루 등 농가주택의 자세한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농가에서 수확한 곡식과 생필품, 농기구를 파는 장터의 모습도 구현돼 있었다.

“우리말로 ‘저자’라고도 하는 장터는 오늘날의 재래시장·5일장의 원조 격이에요. 15세기 후반 농업생산력이 발달하면서 나타났는데, 농업생산력이 앞선 경상도·전라도·충청도에서 먼저 등장했죠.”

이 때의 장터는 40리(약 16㎞) 간격을 두고 5일마다 열렸다고 한다.생활관 옆에는 ‘논·밭의 사계’라는 이름의 모형 전시시설이 펼쳐져 있었다. 전시시설 양 벽면은 봄부터 겨울까지의 농촌 모습을 계절별로 볼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약 15㎝ 크기의 미니어처 농부들이 각 계절별로 농사 짓는 모습이다. 시선을 아래로 돌리자 흙과 물이 흐르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유리 바닥이 눈에 들어온다.

“이제 막 모내기를 마친 논의 모습입니다. 개구리와 물방개, 메뚜기, 잠자리, 뱀과 같은 생물들이 논에 살고 있어요.”

노 과장의 설명에 평가단은 바닥에 놓인 생물 모형을 신기한 듯 구경했다.

*관람 정보

시간 오전 9시 30분~오후 6시(월요일 휴관)
관람료 무료
주소 서울시 중구 새문안로 16 농협중앙회 농업박물관
찾아오는 길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5번 출구에서 도보로 1분
문의 02-2080-5727

*체험 정보
내용 ‘3월 어린이 농업박사’ 교육, 농업의 역사와 우리 조상들의 농업 생활상 공부
참가 일정 3월 8일부터,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시작
참가 대상 초등학교 3~6학년
소요 시간 2시간

*소중 체험평가단의 소감

김민솔(인천 신대초 3) ★ ★ ★ ★ ★

“계절별로 농사 짓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전시실이 인상 깊었어. 미니어처들이 너무 귀엽고 동작도 다양해서 책으로만 보던 옛 농촌 풍경과는 느낌이 달랐어. 마치 타임머신을 탄 기분이었지. 조상들이 사용하던 농기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직접 보니 매일 아침 먹는 밥을 남기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김원정(인천 청일초 3) ★ ★ ★ ★ ★

“막연하게 알고 있던 농사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 산을 계단 모양으로 일궈 밭을 만들었던 조상들의 지혜가 놀라워. 2층에 있던 실제 크기의 사람 모형을 보고 깜짝 놀랐어. 곡식을 파는 아저씨와 엿장수 할아버지가 내 이름을 부를 것만 같은 표정으로 서 있었어. 가끔 가던 재래시장이 농업의 활성화 덕분에 생겨났다는 얘기도 흥미로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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